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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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수록 충족되지 않은 배고픔. 바로 '지혜'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고 합니다.


철학자 philosopher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포스 philosophos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소유가 아닌,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음을 의미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철학적 여행가 에릭 와이너 작가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철학자의 경험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소유하는 지식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실천하는 지혜를 삶에 자리 잡게 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인도, 일본, 스위스, 프랑스 등에 세계 곳곳에서 열차를 타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읽은 에릭 와이너 작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열차' 같은 표현처럼 철학자의 말과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오로지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옆으로 흘러가는 풍경들, 아늑함이라는 감각 덕분에 철학적 사고 행위가 더 잘 되는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부터 20세기 보부아르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관심을 뒀던 실용적인 철학자 열네 명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철학 책의 익숙한 포맷인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문제를 직접 끌어옵니다.


"반드시 침대에서 나가야 하나?"처럼 등짝 스매싱 각인 질문이 이곳에서는 진지한 철학적 문제로 둔갑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취약하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평생 늦잠을 잤다는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돈독한 형제애를 느낍니다. 마르쿠스의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고 합니다.


"《명상록》을 읽는 것은 곧 철학하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다." -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 편에서는 대화를 통한 질문의 힘을 강조합니다. 제이컵 니들먼 교수의 《철학의 마음》을 읽고 감명받은 저자는 교수와 직접 면담을 하기에 이릅니다. 제이컵 니들먼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질문을 경험하라고 조언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찾아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입니다.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경험하는 데서 오는 뜻밖의 즐거움에 매혹된다는 것. 이게 가능하려면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을 두면 된다고 해요. 보통 질문의 힘을 강조할 땐 '왜?'에 집중하는데 '어떻게'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지?처럼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철학은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게 와닿습니다.


철학 책을 읽다가 빵 터지는 진기한 경험도 했는데 이 작가의 유머 코드가 제 취향인가 봅니다. 철학자들과의 닮은 점을 어필하는 대담함을 가진 에릭 와이너 작가. 짜증나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지인에게서 듣곤 하나봅니다. 소크라테스도 그랬다면서 뿌듯해합니다. 물론 철학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도 스스럼없이 밝힙니다. 그 지점이야말로 철학자들의 가치가 빛나는 포인트입니다. 저자의 자학 유머에 배꼽 잡는 와중에 철학자들의 위대한 말과 생각의 핵심이 자연스럽게 기억됩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철학을 어렵게 여기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524페이지라는 두툼한 분량인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가 기차에서 철학자들의 대표 명저를 읽고 그 핵심을 들려주는 글들은 작가처럼 리뷰 쓰고 싶을 정도로 문체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내 주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루소가 사용한 언어다.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루소의 언어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어려운 철학적 표현과는 다르다. 멋지네, 나는 샤르도네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생각한다. 샤르도네는 정말로 책과 잘 어울린다." - 책 속에서


루소처럼 걷고, 소로처럼 보고, 쇼펜하우어처럼 듣고, 세이 고나곤처럼 아름다운 작은 것에 감사하고,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고, 몽테뉴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삶.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은 인생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훌륭한 처방전이 되어줍니다.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의 하이라이트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상황에서 빛을 발합니다. 우울과 불안을 줄줄이 끌어와 망연자실한 작가에게 철학자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장 멈춰 서서 나의 생각을 의심하라고 재촉하고, 에피쿠로스는 나의 위기에 침을 뱉고, 세이 쇼나곤은 벚꽃처럼 휴대전화도 영원한 것이 아님을 짚어줍니다. 마침표를 찍은 건 니체입니다. 똑같은 이 길을 걷고 또 걷게 될 거라고. 다시 휴대전화를 어설프게 만지작거리다 매번 액정부터 바닥에 떨어뜨릴 것이라고. 영원히. 영원토록. 😱


환상적인 위트와 철학의 지혜를 만끽할 수 있었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굿즈도 어쩜 이런 센스를 발휘했을까요. 열차 티켓 책갈피는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해당 챕터마다 스티커를 붙일 수 있습니다.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소개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되는 QR코드도 있습니다. 음악과 함께하니 읽는 내내 진짜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쉽게 쓰여진 철학책이라고 해서 읽었건만 그것조차 어렵게 느꼈던 분이라면 에세이 읽듯 흘러가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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