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 적게 벌어도 잘사는 노후 준비의 모든 것
요코테 쇼타 지음, 윤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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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노후해결사로 불리며 맞춤형 노후 전력과 인생 설계를 제시하는 요코테 쇼타 1급 노후설계사가 알려주는 노후 준비 지침서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인생 후반기가 거의 50년이나 되는데도 외면하기 일쑤인 노후 준비. 당신의 노후 준비는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는지요. 막연한 불안감에만 사로잡혀있을 뿐 자꾸 미루기만 하는 노후 설계. 몇 살쯤에 어떤 문제가 내게 일어날지 미리 안다면 대책 세우기가 수월할 겁니다.


50세부터 100세까지 연령대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노후 문제와 그 해결책을 연표 형식으로 정리한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노후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50세는 아픈 부모를 돌보았더니 찾아온 우울증과 조기퇴직, 51세는 갱년기를 겪는 아내의 분노가 폭발하다, 60세는 연수입은 절반으로 뚝, 일은 신입사원급으로 돌아가다 식으로 50세 이후 나에게 찾아올 노후 문제들을 짚어줍니다.


40대가 되면 내 몸 곳곳에서 탈이 나는 곳이 어찌나 소소하게 많이 생기는지. 건강 걱정은 50대에 이르러 부모님의 돌봄 문제로 이어집니다. 초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은 노후 돌봄 관련 분야가 잘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현장에선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인 건 여전하다고 하네요. 결국 돌봄퇴직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양육비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드는 시점이라 경제적 타격이 큰 시기와 맞물립니다. 재취업도 힘들고 자신의 연금 수급액도 줄어들지만 어쩔 수 없이 돌봄퇴직을 하게 됩니다.


갱년기 장애, 상속 분쟁, 황혼 이혼 등 50대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잘 짚어줍니다. 상속 분쟁 같은 경우는 재벌이 아니라고 해서 맘 놓고 있을 수 있는데, 오히려 5억 이하에서 가장 분쟁 빈도가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임금피크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계 수입의 80퍼센트만 가지고 살림살이가 돌아갈 수 있게 미리 설계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합니다.


60대는 정년 시점입니다. 퇴직 후 노인성 우울증, 고부 갈등 등이 생길 수 있는 시기입니다. 최적의 연금 수령 시기는 65세 이후 3년 정도 미루는 게 좋다고 하는데요. 70세까지 일할 플랜을 세우고 대비하라고 합니다. 정년 후 연금을 받기까지 공백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관건입니다. 퇴직 후 새고용, 이직, 창업, 조기은퇴 등의 시나리오를 세심히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노후 대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후는 연금 수입 × 근로 수입 × 임대 수입의 3개 기둥을 조합해서 70세까지 견뎌내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70세 이후 다가올 노후 문제들 역시 돈으로 귀결됩니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이 10년도 못 가 사라져 노후 파산 문제가 생기고,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병도 두렵고 의료비에 간병비 등 인생 최대의 경제 손실이 닥칠 수 있습니다. 요양원 입소도 높은 비용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자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눈치 보이고, 하물며 다시 백수가 된 자녀 또는 이혼해서 돌아온 자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돈, 재산, 건강, 이혼, 상속, 요양까지 최악의 상황만 다룬 게 아닌가 싶겠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노년기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은 국가마다 차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실정에 딱 맞는 노후 지침서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사실 읽는 내내 갑갑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요. 이 모든 문제들을 미루기만 한 채 그때 가서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만큼이나 용기를 내어 노년 시나리오를 마주하고, 나에게 맞는 이상적인 노후 인생설계를 시작한다면 최악의 노년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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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아일랜드 - 2021-2022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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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문화를 만드는 장소이자 아일랜드 정신의 상징 템플바 Temple Bar로 장식한 표지만으로 아일랜드의 감성 충만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국 옆에 위치한 섬나라 아일랜드. 우리나라에선 비긴 어게인 방송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버스킹의 천국 아일랜드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지요. <해시태그 아일랜드> 가이드북에서는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고, 멋진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는 아일랜드의 구석구석을 소개합니다.


직항이 없어 영국에서 저가항공으로 더블린으로 입국하는 루트가 일반적입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거점도시로 삼아 남부, 서부, 북부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섬 안에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곳입니다. 아일랜드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여전히 영국령인 북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은 가난과 오랜 지배를 음악에 맞춰 극복했다."라는 아일랜드인의 이야기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버스킹과 펍 문화를 빼놓고 더블린을 이야기하면 안 되지요. 아일랜드 역사와 함께한 문화이기에 역사 이야기도 놓치지 마세요.


무엇보다 더블린은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버틀러, 사무엘 베케트, 조지 버나드 쇼, 세이머스 히니를 포함해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등 아일랜드를 빛낸 작가들이 많은 만큼 작가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아일랜드 여행을 시작해볼까요.


빈곤의 도시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제는 영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선 경제성장을 보인 아일랜드. 그 기념으로 더블린에는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120m 높이의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스파이어 첨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더블린 중심가 오코넬 거리, 아일랜드의 가장 오래된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종교적 중심지 크라이스트처치 성당, 기네스 맥주 박물관, 아일랜드 독립 투쟁사를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성 스테판 정원 등 현대적인 건물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혼재한 더블린의 매력이 담겨있습니다.


더블린을 벗어나면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주상절리와 함께 남부, 서부의 분위기는 더블린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중세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도시들, 타이타닉의 마지막 기항지로 유명한 항구도시, 서부 해안을 따라 나있는 세계 최장의 해안 도로 와일드 아틀란틱 웨이도 있습니다.


아일랜드까지 갔는데 정치, 문화, 역사 중심지인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놓치기 아쉽습니다. 표지판만 있을 뿐 아일랜드 여행자가 북부를 여행하는 데는 문제없다고 합니다. 왕좌의 게임 촬영지 여행 루트도 있고, 자이언트 코즈웨이의 주상절리 대장관도 있는 북아일랜드까지 섭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가이드북입니다.


문학과 음악을 사랑하고 흑맥주 기네스의 본고장인 아일랜드. 생생한 도보 여행기는 직접 그곳을 거닐고 있는듯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자유로움과 낭만이 가득한 여유를 즐기고픈 여행자들의 로망 여행지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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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아일랜드 - 2021-2022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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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지정 문학도시 더블린의 매력을 알게 되니 로망 여행지가 되었어요. 궁금했던 북아일랜드까지 잘 소개되어 있는 가이드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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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를 찾아서
미치 앨봄 지음, 박산호 옮김 / 살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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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카펫 위에 누워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치카. 작년 봄 세상을 떠난 치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미치 아저씨를 보며 왜 글을 안 쓰고 있냐며 타박하는 치카입니다.


처참했던 아이티 지진을 계기로 아이티의 보육원 운영을 맡게 된 미치 앨봄과 그곳에서 만난 다섯 살 시한부 소녀 치카. 핏줄로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이 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치카를 찾아서 Finding Chika>는 치카가 세상을 떠난 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감정에 복받쳐 있었던 미치 앨봄에게 진정한 애도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치카가 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카가 가르쳐준 교훈들을 글로 쓰기 시작하는 미치 앨봄. 너(치카), 나(미치 앨봄), 우리(가족)의 이야기로 반복되는 구성은 미치 앨봄과 아내 재닌이 50대 중반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섯 살 치카를 돌보며 경험한 기적을 회고록처럼 그려냅니다.


2010년 1월에 태어난 치카는 아이티 지진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세 살 때 보육원으로 가게 됩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당찬 모습을 보인 치카는 씩씩하게 보육원 생활을 하지만, DIPG라는 희귀 뇌종양을 앓으며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장기 생존 확률이 제로이지만, 미치 앨봄은 큰 결심을 합니다. 치료를 위해 치카를 미국으로 데려온 겁니다.


미치와 재닌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젊었을 때 성공을 추구하며 언제나 아이 이야기를 피했다는 저자는 그 시절을 후회합니다. 느긋하게 미루다가 아이를 원했던 시기에는 결국 임신이 되지 않아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겁니다. 이제 치카의 법적 보호자가 된 미치 부부는 가슴으로 아이를 품습니다.


20년 전 루게릭 병을 앓으며 죽음이 임박했을 때 드러난 삶의 진실을 가르쳐 줬던 모리 슈워츠 교수를 떠올리는 미치. 돌아가실 때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모리 교수를 만나며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그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보여줬습니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인가"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은 치카의 절망적인 병 앞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생존자가 0명인 희귀 뇌종양은 치료를 한다 해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거라 치료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그는 적극적 치료를 강구합니다.


화가 날 때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고집스럽게 고개를 푹 숙이곤 했지만 그 표정마저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치카. 시시때때로 "이거 봐요"라는 말로 세상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호기심 넘치는 다섯 살 아이와의 생활은 예전에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던 방식에서 시간을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는 방식의 삶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미치의 삶의 속도가 치카의 속도에 맞춰집니다. 뭔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소한 문제로도 부부간의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치료를 두고 서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방사선 치료는 물론이고 실험적 치료를 받으러 독일까지 가서 힘든 치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어린 영혼에만 있는 독특한 강인함을 보여준 아이.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투덜대는 법이 없었던 치카 덕분에 최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려고 애쓴 미치 부부의 노력이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치카가 더 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되자 미치 앨봄이 안고 다니는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안고 다니는 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나타낸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노력이 우리의 유산이다."라며 아이를 안고 다니는 일이 미치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은 내 아이를 안고 다녔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되돌아보게 해 가슴이 저릿저릿 해지더라고요.


4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던 아이가 진단받은 지 23개월까지 버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부담"이었다는 19개월간의 미치 부부와 치카가 함께했던 기적의 나날들의 기록 <치카를 찾아서>. "아저씨의 슬픔이 끝나면 돌아올게요."처럼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미치 앨봄은 치카와의 작별을 이룸과 동시에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행복하면서도 가슴 아팠던 그 시간들은 일곱 가지 빛나는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따스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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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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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텐데요.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는 후각을 의학자의 입장에서 탐구해가는 여정을 그린 독특한 책 <후각과 환상>. 역사 공부와 답사 여행을 즐기는 의학자 한태희의 특별한 여행 함께 해보세요.


우리는 냄새를 어떻게 구별하는 걸까요. 인간은 1000개 정도의 후각수용체 유전자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연색 시각의 발달과 함께 후각은 점점 퇴화합니다. 이제 후각은 논리적 언어보다는 감정에 더 밀착됩니다.


냄새는 콧속 후각세포로부터 신경망을 통해 뇌에 전달됩니다. 인간의 후각 중추는 대뇌 피질 아래 변연계에 위치해있습니다. 이곳은 감정, 기억, 성적 충동, 동기 부여 등을 관장하는 신경조직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뇌에 전해진 냄새 자극은 이곳에 축적된 다양한 기억과 연상에 의해 종합적으로 판단됩니다. 우연한 자극에 의해 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후각적 체험이 되살아나는 메커니즘입니다.


카이로의 오래된 향수 가게, 인도 갠지스강 하류 늪지대의 진흙 냄새, 모로코 가죽 작업장의 악취, 세비야 궁전의 오렌지 꽃 향기, 더블린 도서관의 양피지 냄새, 지중해 작은 어시장의 생선 비린내 등 향기와 악취 속에서 후각과 기억, 감정의 생리적 연관성을 탐구해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후각과 환상>.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감정과 연결된 충만한 감각.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부러워했던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곳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애매한 상상으로만 끝나다 보니 저의 빈약한 감각이 아쉬워지더라고요. 동남아의 깊은 숲 냄새는 내가 기억하는 숲 냄새와는 다를 테고, 낙엽 타는 듯 후추같이 알싸한 유향 냄새를 맡을 때면 나즈와의 깊은 골목을 걷는 감각을 떠올리는 저자의 후각적 체험을 동경하게 됩니다.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들어서기만 해도 특유의 냄새가 자극합니다. 새책만 가득한 서점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오래된 책 냄새는 우디향, 흙 냄새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비 내리는 숲속 나무향보다는 좀 더 묵직한 느낌입니다.


책 종이는 나무 펄프의 가공물이고 펄프는 나무 세포 셀룰로스와 리그닌이 주성분이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종이 성분을 산화시키고 분해하는 과정에서 종이를 누렇게 변색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게 아몬드 향, 바닐라 향, 빵 냄새와 비슷한가 봅니다. 여기에 잉크 냄새, 제본 접착제 냄새까지 더해져 특유의 복합적 향내가 완성됩니다. 책 냄새 이야기는 더블린 도서관의 역사, 종이와 양피지 이야기, 인쇄 발명의 역사, 희귀본 이야기, 아일랜드 문학 전통을 거쳐 더블린만의 축축한 소금 냄새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안정감 있는 우디 계열의 숲 냄새를 좋아하는 저는 축축한 이끼 향, 젖은 흙 냄새가 오묘하게 뒤섞인 숲속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든 소라게 사육장을 통해 집에서도 느껴왔는데요. 이 특유의 냄새를 워낙 오래 맡다 보니 이제 평소엔 못 느끼겠더라고요. 또 다른 냄새를 맡기 위한 생리 현상인 후각 피로 효과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정과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 냄새를 언제든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감정은 환상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후각적 연상이나 환상은 자욱한 매연 냄새나 생선 냄새처럼 싫은 냄새도 여행자의 유혹을 끌어냅니다. 후각적 체험은 감성, 욕망에 얽혀 영향을 주거나, 반대로 감정의 흐름이 후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 해변 카페 거리 음식이라는 고등어 샌드위치는 순간 고등어라는 단어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를 먼저 떠올렸던지라 솔직히 맛보고 싶지 않은데, 단백질을 가할 때 형성된 아미노산이 선사하는 향이라는 글귀를 보니 또 팔랑귀가 되어버립니다.


순천 선암사의 맑고 상큼한 매향에서 더듬어본 선비 문화, 3000년의 세월이 흘러도 희미한 향을 간직한 투탕카멘의 향수에서 이끌어내는 향의 역사 등 후각적 체험이 생물학, 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세상의 냄새를 좇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후각과 환상>. 마스크를 쓰는 요즘은 더 억눌린 후각. 일상에서든 여행지에서든 그곳의 고유한 냄새를 마음껏 갈망하는 후각 세포를 더듬어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냄새를 맡는 것을 넘어 그 냄새를 표현할 때 다양한 감정과 지식이 한데 어우러질 때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원시적 감각인 후각이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적 즐거움을 자극하는 위치에 섰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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