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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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신병주 교수의 조선 역사 신간 <왕으로 산다는 것>. 매번 이해하기 쉽게 조선 역사를 들려주는 저자여서 이번 책도 믿고 펼쳐봤습니다.

 

쭉 읽으면서 든 생각은 무적핑크 작가의 <조선왕조실톡> 만화의 텍스트판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왕으로 산다는 것> 책에서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시대 27명. 그들이 왕이 되기까지 과정, 가족과 참모, 라이벌, 정책 등 왕의 주변 인물과 주요 사건을 다루는데 실톡에서 재미있게 본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언급됩니다. 그래서 더 술술 잘 읽힌 것 같아요.

 

 

 

조선 창업 후 왕권 강화 시대, 사화와 당쟁 등 갈등의 시대, 전란의 시대, 북벌과 이념의 시대, 부국과 중흥의 시대, 개혁의 시대, 시련의 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왕들의 면모를 살피고 있습니다.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태종 편에서는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태조 이성계와의 부자 간 갈등이 심했던 야사를 중심으로 가족사를 소개한 후, 태종의 업적을 짚어갑니다. 한양으로 재천도 후 도심의 홍수 피해 방지로 개천 공사를 착수했던 태종. 현재의 청계천이 이때 바탕이 된 겁니다. 공사에 동원되어 사망한 사람이 64명일 정도로 그 시대엔 동원됐다 하면 목숨 내놓고 일하는 상황이었는데, 태종은 일꾼들의 건강을 신경 쓰며 백성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문고를 설치한 것도 태종입니다. 가족사는 비록 평안하지 못했지만 왕이 된 후 백성들의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힘쓴 점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이처럼 불우한 가족사를 안고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 그 대표격으로는 자식 복도 없고, 며느리 복도 없었던 세종이 있죠.

 

왕의 업적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 시각이 두드러져 꼬리표 붙은 왕들도 많습니다. 생모의 폐위를 뒤늦게 알게 되어 폭군이 된 연산군. 사실 심적으로는 아픈 가족사 때문에 동정표가 가기 마련인데 연산군의 독재정치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부과했고, 엽기적 형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이야기들은 경악할 정도였어요.

한양을 버리고 파천한 선조는 이승만의 부산 피난과 닮은 꼴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경우도 있습니다. 광해군이지요. 정통성 시비로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바람에 인조반정을 맞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광해군을 참 좋아하는데요, 전란의 상처 회복과 실리 외교의 지혜에서는 멋진 리더십을 보여줬거든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균형 있게 평가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왕으로 산다는 것>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참 좋게 봐줄 수 없는 왕이 있는데, 인조입니다.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모조리 폐기되고 북벌정책을 무리하게 앞세우다 결국 두 차례의 호란을 겪습니다. 게다가 아들 소현세자의 의문사, 며느리에게는 사약을 내리고, 손자들은 유배시켜 결국 죽게 만들고.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부각시킨 인조반정의 의미를 스스로 말아먹은 왕입니다. <실톡> 볼 때도 인조 편은 그렇게 욕했었는데, 여기서도 도무지 정 안 가는 왕이라는 게 굳건해질 정도네요.

 

 

 

반대로 아들을 죽여놓고서도 탄탄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왕도 있습니다. 영조입니다. 서민을 위한 정책, 준천 사업 등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했거든요. 영조가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역시 개혁 군주로 이름을 드높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깊은 상처로 박혀있지만, 정치적 보복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왕권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지금 제가 수원시민이다 보니 수원 화성을 만든 정조에게 유독 관심이 많긴 합니다.

 

 

 

정조 이후부터 조선은 내리막길입니다.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속에서도 공노비를 해방해 신분제 폐지의 기틀을 마련한 순조처럼 그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봅니다.

 

이후 더 무기력해지는 조선의 역사는 읽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인 것을. 조선 왕들의 태도와 업적을 통해 반면교사 삼을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입니다. <왕으로 산다는 것> 다음으로 읽으면 좋은 책이 생각나는군요. 최근에 읽었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서 12명의 권력자들을 다룹니다. 함께 읽으면 조선부터 현대까지 집권자의 면모를 훑을 수 있겠습니다.

 

 

쉬어가는 코너, 왕의 글씨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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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셀프 트래블 - 나 혼자 준비하는 두근두근 해외여행,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조은정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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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유럽 여행이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미국 여행 어떤가요. 주식과도 같은 항공권이라 할 정도로 여행경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항공권 가격이 만만찮긴 하지만, 대자연을 품은 미국 서부의 매력을 알고 나면 몸이 들썩거리게 될 겁니다.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에서는 서부 대표 도시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포틀랜드와 근교를 소개합니다. 할리우드 영화광이라면 도시 이름만 들어도 영화 배경지가 자연스럽게 생각날 정도로 은근 익숙한 곳일 겁니다.

 

지난달에 읽은 <청춘 일탈> 여행에세이를 통해 미국 국립공원의 매력을 맛봐서 저는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에서도 대자연 코스에 특히 관심 끌리더라고요.

 

 

 

미국인들이 최고의 국립공원으로 꼽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오묘한 빛깔 간헐천, 마크 트웨인이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호수라고 지칭한 타호 호수, 사진으로만 보던 환상적인 사암 협곡 앤털로프 캐니언처럼 미국 서부 협곡, 강, 호수 등 대자연을 누릴 수 있는 코스가 인상 깊습니다.

 

어렸을 땐 디즈니랜드 가보는 게 소원이었고, 영화에 푹 빠졌을 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동물을 좋아하니 세계 최대 규모 해양 레저 시설인 미션 베이 공원 내 위치한 시 월드 샌디에이고 가보는 것도 꿈이었고. 이젠 국립공원 위주로 돌아보고 싶어졌으니, 나이 들면서 조금씩 로망지가 바뀌긴 하는군요.

 

미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휴양, 영화, 쇼핑, 뮤지엄 등 테마를 정해 여행코스 짜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도시마다 4박 5일 코스를 별도로 소개하고 있고, 미국 서부 전체 일정은 우리나라 직장인이 휴가 뺄 수 있는 평균 10일을 바탕으로 8~9일 정도의 코스를 소개해준답니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광이라면 LA는 필수 방문지죠.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 곳을 찾아다니는 재미 쏠쏠할 것 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수교로 알려진 금문교는 기념사진 촬영 놓치기 아까운 곳이기도 하죠. 베스트 뷰 포인트를 짚어주고 있으니 멋진 인증샷은 필수. 

 

 

 

도시 내에서는 어떻게 이동하면 좋은지,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 기본 정보는 모두 2017년 2월 기준으로 최신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시티패스나 필요한 어플 등 소소한 팁은 덤.

 

미국 서부 여행 핵심 코스만 쏙쏙 뽑아 헤매지 않고 여행 계획 세울 수 있게 도움 주는 여행 가이드북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도 쓴 조은정 여행작가의 책입니다. 미국 여행지 정보는 이 두 권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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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도구들 - 1만 시간의 법칙을 깬 거인들의 61가지 전략
팀 페리스 지음, 박선령 외 옮김 / 토네이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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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아마존 통합 베스트셀러 1위에 빛나는 책이어서 급관심 가진 책입니다.
알랭 드 보통, 세스 고딘, 말콤 글래드웰, 파울로 코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과 구글, 픽사, 넷플릭스 등의 창업자와 CEO 등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 200명을 팀 페리스 쇼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시킨 저자, 쫌 대단한걸요?! 팟캐스트 비즈니스 분야 최초 다운로드 수 1억 회 돌파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타이탄의 도구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이들을 타이탄이라 지칭하고, 그들의 성공과 지혜 그리고 건강에 관한 루틴과 습관을 분석한 책입니다. 강박적인 노트 수집가인 저자의 습관 덕분에 탄생한 책이기도 하군요. 18살 이후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팀 페리스 저자는 그가 깨달은 인생의 비결이 담긴 노트를 과감히 공개합니다.




단순한 인터뷰에서 그치지 않고 타이탄들과 함께 운동하고 요리하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노트. <타이탄의 도구들>은 모든 노트를 지배하는 '최후의 노트'라고 단언할 정도로 지혜로운 도구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타이탄에게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품고 있더란 겁니다. 하지만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소소한 디테일'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담대한 목표에 비해 실천은 매일의 작은 습관, 태도, 즐겨하는 질문들, 독서법 등 사소한 것에서 자신만의 루틴과 전략을 만들어낸 겁니다. 

뛰어난 사람이라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단지 한두 개의 강점을 극대화했을 뿐입니다. 밑줄 그으세요. 한두 개의 강점!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타이탄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 <타이탄의 도구들>. 타이탄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막힌 아이디어의 출구를 어떻게 찾는지, 문제 해결을 위한 습관은 무엇인지 등을 세세하게 알려줍니다.

타이탄들은 하루의 첫 60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명상을 하기도, 아침 일기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에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습니다. 하루 10분 7일 지속하는 걸 목표로 작게 시작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작은 성공 맛보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조작하는 겁니다. 

승리하는 아침을 만드는 5가지 의식이라는 소제목으로 소개한 다섯 가지 스킬이 있는데, 재미있는 건 타이탄들도 꼬박꼬박 매일 하는 건 아니라고 해요. 대신 최소한 매일 한 가지 이상은 해치웁니다. 사소하지만 중요 포인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같은 주제는 사실 자기계발서 성공학 분야에선 꽤 흔한 소재입니다. 하지만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면서 식상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툭 건드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인상 깊은 부분 두어 가지 소개하자면. 인재를 찾을 때 낮 시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테니 퇴근 후와 주말에 매달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밤 시간과 주말에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하고 싶은 일 목록, 일명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영화감독 케이시는 싫어하는 일의 목록을 지워나가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최고의 성과 도구 61가지는 생각 외로 알찼습니다. 타이탄들은 이렇게 하더라 식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저자도 직접 해보니 정말 좋더라 혹은 더 새로운 방법도 있더라 식의 조언으로 이어집니다. 명상하면 좋다로 끝내지 않고 명상 분야 최정상에 오른 이들의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거나, 타인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 언어를 최대한 긍정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다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공부하라는 등 바로 찾아보고 스킬을 써먹을 수 있는 팁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SNS 팔로우 수에 목숨 건다면 진정한 팬 1,000명을 이야기하는 글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때도 숫자보다는 진정한 팬에 초점 맞춰야 합니다. 당신이 만드는 건 뭐든지 사주는 이들로 정의할 수 있는 진정한 팬이거든요. 이제 1,000명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죠. 진정한 팬의 하루치 임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자극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둘씩 실천하는 과정에서 드는 두려움과 불안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까지 언급하고 있어 좌절감을 이길 수 있는 바탕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연소 정년보장 교수인 옥스퍼드대 철학교수 윌 맥어스킬의 말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요. 열정을 쫓아라!는 끔찍한 최면을 집어치우라고 합니다. 뜨거운 가슴, 열정으로 극복하는 대신 이성적인 측정 기준을 제시합니다. 

외식 시간이 두 시간이라면 5분 정도는 어느 식당으로 갈지 결정하는 데 쓰죠. 우리가 평생 일하는 시간에 적용해보면 8만 시간쯤 된다는데, 8만 시간의 5퍼센트인 4,000시간 혹은 2년 
(4,000시간은 실제 166일이지만 24시간 꼬박 연속으로 쓰는 게 아니니 2년 정도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도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데 쓰라고 합니다. 궁지에 몰려, 시간에 쫓겨 열정 따위를 마법처럼 외치며 괴롭게 살아가는 일은 최소한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위한 습관까지 다루고 나면 결국 <타이탄의 도구들>은 건강한 삶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에 다다릅니다. 타이탄들의 방법을 61가지로 크게 나눠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한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1등의 몫. 쉬운 목표가 아닙니다. 대신 두 가지 이상 일에서 상위 25퍼센트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한 가지 기술만 가진 사람들의 리더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은 오히려 후자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성과를 창출하는 심플하지만 단단한 루틴과 습관을 알려주는 책, 타이탄의 도구들. 앞으로 성공학 스킬을 다룬 책 소개할 때 이 책을 필수 책으로 권할 만큼 저는 만족스럽게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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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요 - 봄처럼 찾아온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클레리 아비 지음, 이세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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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맨스 소설은 소장용으로 웬만해선 간직하지 않는 편인데, <나 여기 있어요>는 책장에 벌써 자리 잡았습니다. 소설 내내 남녀 간 대화 없이도 이렇게 달달한 로맨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2015 프랑스 새로운 인재상 수상 작가 클레리 아비 작가의 로맨스 소설 <나 여기 있어요 I'm Still Here>.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와의 러브스토리라고 해서 처음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남녀 간의 꽁냥꽁냥 스토리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없는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와 흡인력에 푹 빠져 무척 즐겁게 읽은 소설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지 20주. 깨어난 지 6주.
엘자의 의식은 깨어났지만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시간들을 '고치를 빌려 사는 번데기처럼' 홀로 보낸다는 걸 상상하니 오싹해집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나 여기 있다고.

 

 

 

동생의 사고로 병원에 왔다가 엘자의 병실로 잘못 들어간 티보. 하필 그날이 엘자의 생일인 걸 알고 생일 축하 뽀뽀를 하질 않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을 풍기는 엘자에 끌려 그 병실에서 낮잠을 자질 않나... 뻔뻔하지만 유쾌한 티보의 행동은 그린라이트가 반짝반짝~!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뭘 바라는지는 알아.

 

감각은 없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엘자는 티보가 궁금해 미칠 지경입니다. 유일하게 새로운 것이고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유일한 흥밋거리입니다. 웃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사람입니다.

 

애증으로 가득한 동생 때문에 오는 병원이지만 엘자를 생각하면 병원 면회 가는 일이 즐거운 티보. 병원 갈 때마다 엘자의 병실에 들립니다. 티보에게 그곳은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거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서 자기도 모르게 위안을 받고 절실하게 깨어나길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낮잠을 자죠. 이제는 딱딱한 의자 대신 과감하게 엘자의 침대 한편에 누워 자는 티보. 그를 느끼지 못해 더 애가 타는 엘자는 그의 체온만이라도 느끼고 싶습니다. 눈을 뜨라고 명령하는 생각만 하면서 정신 훈련을 할 정도입니다.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새벽, 청소 아주머니가 엘자의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생깁니다. 엘자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티보도 엘자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지만 정작 의사들은 믿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력으로 숨도 거의 못 쉬는 엘자의 연명 치료가 중단될 위기에 처합니다. 회복될 확률은 고작 2퍼센트도 안 된다며 의사의 공식 선고까지 받은 상황에서 가족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엘자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믿어 주는 유일한 사람, 티보를 꼭 보고 싶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뜨고 싶다.

 

 

 

안타깝게도 동생의 자살로 절망에 빠진 나날을 겪는 티보. 뒤늦게서야 엘자의 연명 치료 중단 소식을 듣게 됩니다. 중단하는 바로 그날에 말이죠. 이미 늦었을지 모르는 시점입니다.

 

<나 여기 있어요>는 엘자와 티보 간의 직접적인 대화는 없지만 각자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네요. 상황상 분명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가슴 아릿해야 하는데, 담백하게 절제한 감정과 소소하게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유머가 별미입니다.

 

엘자의 병실에서 꼬박꼬박 낮잠 자는 티보는 병원 매트리스의 편안함을 격하게 칭찬하며 단잠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 부부의 아기를 봐주면서 유모차 펴는 법을 몰라 씨름하는 모습 등 은근 허당 기질이 엿보이더라고요. 사실 읽는 내내 이런 남자 남편감으로 최고라고 할 만큼 아기의 대부 역할은 엄지 척! 해줄만했어요. 엘자 역시 살아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는 의사를 두고 분노의 태풍이 몰아닥치는 상황에서 "저 인간 다리몽둥이가 부러지게 해주세요." 하며 순간 풋~ 웃음을 주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눈물바람나게 해 마음이 불편해지는 로맨스류는 두 번 읽지는 않는데요, <나 여기 있어요>는 소소한 웃음과 심쿵할만한 달달함 그러면서도 심장이 저릿해지는 안타까움까지 그 균형이 절묘해서 한 번 읽고 난 후 다시 읽어 볼 정도였어요. 외전이 필요해!!! 외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나는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
지금 당장은, 내가 가장 제정신으로 저지른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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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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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엽기적인 제목을 봤나. 벚꽃 만발 달달한 표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제목이라니.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저 제목을 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해진답니다.

 

2016년 일본서점대상 2위, 일본 독자가 읽고 싶은 책 1위 등 2016년 일본 출판계 각종 상을 휩쓴 라이트노벨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선배 작가의 눈에 띄어 빛을 본 소설이라는데 만화판, 영화판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독자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열일곱 살 사쿠라에게서 나온 이 말을 듣자마자 카니발리즘 소설인가 싶어 흠칫.

신체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을 때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든지,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카니발리즘이 행해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췌장에 생긴 병으로 1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쿠라.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학교에서는 유쾌하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어 그 누구도 그녀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나'에게 공병문고라는 비밀노트를 들켜버립니다.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유일한 클래스메이트입니다.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나'의 이름. 그녀는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등으로 부르고, 친구들 역시 '음울해 보이는 클래스메이트', '눈에 잘 안 띄는 클래스메이트' 식으로 불러요.

여기서 '나'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관심 없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나'. 반면 그녀는 친구가 많고 인간관계 폭이 넓습니다. 나와 그녀는 모든 것이 정반대입니다. 불가피하게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후로는 그녀에게 휘둘리며 끌려다니게 됩니다. 

 

 

 

 

그녀의 밥이 되어 주말 외출도 함께 하고 1박 2일 여행도 하게 되지만, 죽음과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는 그녀를 볼 때면 죽음의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왜 나 같은 사람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건지 의아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결정권에는 고분고분~

 

둘의 대화를 보면 은근 재미있어요. "죄송하지만 자살하기 위한 밧줄을 찾고 있는데요, 역시 외상을 입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경우에는 어떤 타입의 밧줄이 가장 무난할까요?" 하며 자살용 밧줄을 점원에게 묻는 것처럼 그녀는 깨는 행동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녀의 약간 머리가 돈 듯한 질문'이라고 평하는 '나'.

독자 입장에서는 둘의 관계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순수함이 깃든 채 어른 놀이를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미래가 없는 그녀의 옆에 있어도 죽음을 의식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의 가방에서 주사기와 수많은 알약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지진이 난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왜 끌리는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갑작스레 입원하게 된 그녀를 두고 죽음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기도 합니다.

 

퇴원 후 만나기로 한 그날. 그녀를 기다리면서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을 깨닫습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나는 실은 네가 되고 싶었어.'였다는 것을. 그동안 그녀에게 끌려다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더 이상 휩쓸리는 풀잎 배 따위가 아닌, 나와는 정반대인 그녀를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투병일기가 아닌 공병(共病)이라고 이름 붙인 노트에는 병이 든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기로 한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고등학생 소녀가 소년을 만나 풋풋한 사랑을 하다 죽는 이야기라는 결말이 예측되는 스토리일 수도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좋았어요.

 

시작과 끝은 예상할 수 있지만 뻔한 전개도 아니었고 개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덕분에 유쾌하게 읽기도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와 닿는 문장도 많아요. 은둔형 외톨이 소년과 긍정덩어리 소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어리고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그녀를 만난 그날, 내 인간성도 일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가 가져와준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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