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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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차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하면서 말이죠. 홍성수 교수의 신작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바로 그 말이야말로 차별의 시작점이라고 짚어줍니다. 법학자이자 인권 연구자인 저자는 혐오와 차별을 연구해온 지난 20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차별의 구조를 만든다는 사실을 꿰뚫어 봅니다.


전작 『말이 칼이 될 때』로 혐오 표현의 사회적 메커니즘을 분석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칼의 말을 넘어, 차별이 일상과 제도에 스며드는 방식을 낱낱이 해부합니다.


저자는 "위기가 위기인 이유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엉뚱한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바로 혐오와 차별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안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자각을 요구합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을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권력의 문제로 정의합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식당에서 거절당하는 것은 불운일 수 있지만, 히잡을 쓴 사람이 거절당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자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후자는 정체성에 대한 부정,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폭력입니다.


저자는 차별이 단순히 상처받는 기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위협하는 불안의 구조임을 일깨워 줍니다. 차별의 피해자들은 세상의 모든 곳에서 자신을 환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이 반복될수록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을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속성을 근거로 불리한 대우를 하는 행위로 규정합니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차별뿐 아니라, 제도와 문화 속에 숨어 있는 간접적 차별 그리고 괴롭힘, 조롱 같은 사회적 모멸까지 포함됩니다.


저자가 든 대표적 사례는 노키즈존입니다. 아이를 거부할 수 있다면 다른 사유로도 누군가를 거부할 수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노키즈존이 영업의 자유라면 흑인 출입 금지, 무슬림 출입 금지, 동성애자 출입 금지도 다 용인되어야 하는 논리입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아이들에 대한 예절 교육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문화적 습관입니다. 저자는 노키즈존이 노시니어존, 노아재존으로 확장된 현상을 지적하며 우리가 언제부터 자유를 타인의 배제 권리로 착각하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이제는 노차이니즈존까지 생겼습니다.





불편한 타자를 제거함으로써 쾌적함을 얻는 사회. 그것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없는 사회로 이어집니다. 홍성수 교수의 관점은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사회학적 구조 분석에 가깝습니다. 노키즈존은 소비자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시장 논리가 공동체의 윤리를 대체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차별이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의 편의가 만든 배제의 언어임을 깨닫게 됩니다.


홍성수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진 이유를 구조적 차별의 부정에서 찾습니다. 윤석열 대선후보 시절 발언 중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 것을 사례로 들며,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차별을 더욱 은폐한다고 비판합니다.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부정하면, 각자도생하며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되니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을 비교하며, 노골적 차별이 사라진 대신 자발적 포기의 형태로 진화한 비가시적 차별을 분석합니다.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믿는 태도는 사실상 사회의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퇴행일 뿐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구체적 해법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시합니다. 차별금지법이 단지 소수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적 최소 장치라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할 자유, 대학에서 동성애자 학생을 차별할 자유, 사회복지시설에서 성소수자를 괴롭힐 자유를 금지하는 겁니다. 괴롭힐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요? 홍성수 교수는 법적 정의가 인간의 일상 속 존엄을 회복하는 데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냅니다.


음모론과 함께 혐중 정서가 폭발한 오늘날의 사태는 한국 사회가 혐오와 차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합니다. 극우 세력은 혐오를 연료 삼아 힘을 키웠습니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의 극우화를 걱정한다면 우리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는 누구든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디에서 살아가든 차별받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은 나의 현재가 어떠하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단지 인권 담론의 언어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시민의 언어입니다. 차별을 막는 것은 우리 공동의 미래뿐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일깨워 줍니다. 차별의 종착지는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 다른 누군가를 향한 배제가 내일은 나를 향한 부메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차별이 없다거나 역차별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시각이 얼마나 구조적 특권에 기대어 있는지 발견하게 될 겁니다.


차별 앞에서 침묵은 공범입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차별을 남의 문제로 외면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 교양서이자 감정의 리터러시 교본입니다. 평등은 시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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