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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해방 - 알츠하이머병 세계적 권위자가 30년 연구로 밝힌 뇌 건강 프로젝트
묵인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이자 치매융합연구센터 센터장으로 30년 넘게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기전과 치료제 개발을 파고든 세계적 권위자 묵인희 교수의 『치매 해방』.
치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 혹은 내가 사는 집의 구조조차 잊어버리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2050년 치매 환자 300만 명 시대를 앞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치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묵인희 교수는 치매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바라보자고 합니다. 치매의 오해와 진실, 조기진단의 중요성, 치료와 예방까지 최신 과학적 연구성과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며 실천 가능한 생활 지침도 함께 전합니다.
흔히 치매를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치매는 노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명확한 질병으로 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하며 단순 건망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건망증과 알츠하이머병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잊어버리는 기억의 범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즉,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잊었다가 나중에 떠올리는 것은 건망증이지만, 열쇠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는 것은 치매의 신호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치매를 단일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치매는 수많은 원인과 다양한 경로로 발병하는 다면적 질환군이라고 합니다. 원인과 진행 속도, 치료 가능성 역시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치매=망각이라는 단순화된 등식을 떠올립니다. 『치매 해방』은 이런 오해를 걷어내고 과학적 시선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치매는 오랜 세월 뇌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병입니다. 증상이 드러나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발병 후 10~15년이 지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치매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합니다.
최첨단 진단 기술의 발전 덕분에 조기진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혈액검사를 통한 바이오마커 측정, 인공지능을 활용한 MRI 분석은 이미 임상에서 활용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특히 AI 기반 영상 분석은 뇌 위축과 혈관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해 치매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도구입니다.
조기진단은 빨리 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증상의 진행을 늦추고, 약물 치료나 생활습관 교정을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 치료와 관련한 희망의 문은 점차 열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 항체 치료제를 설명합니다. 아두카누맙과 레카네맙 같은 약물은 뇌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여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모든 환자에게 획기적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질병의 본질에 접근하는 약물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계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시도도 소개됩니다.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스마트폰 앱, 게임, VR 등을 활용하는 디지털 치료제는 인지 기능을 훈련시키고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VR 기반 인지 훈련은 환자들의 공간 감각을 되살리고, 음악 치료는 정서적 안정을 돕는 사례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치매 치료의 본질을 맞춤형 다학제 치료에서 찾습니다. 약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미술·음악·운동·사회적 교류 같은 비약물적 요법이 환자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고 합니다. 치매가 단순히 뇌 속 세포의 문제를 넘어, 인간 전체의 존엄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치매 해방』의 핵심은 예방에 있습니다. 저자는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뇌가 손상되거나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인지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힘, 즉 뇌의 근육 같은 것입니다.
인지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병리 변화가 있어도 증상이 늦게 나타나거나 경미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뇌 속 병리 변화를 지니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일찍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지예비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저자는 항산화 식단, 규칙적 운동, 양질의 수면, 사회적 활동 등의 생활 습관을 강조하며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소개합니다. 어쩌면 뻔한 조언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니 잘 지키고 있다는 말을 하기 어렵더라고요.
묵인희 교수는 치매 극복을 개인과 사회의 연대 과제로 규정합니다. 치매는 환자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 해방』은 치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준비 가능한 도전으로 바꿔주는 책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뇌 질환이 과학과 실천을 통해 극복 가능한 프로젝트로 변모하는 순간, 치매 없는 100세 시대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준비된 노년의 실용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