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은 인종차별이 있다, 없다? 대부분 없다는 쪽에 손을 들 겁니다. 있더라도 그저 일부의 이야기, 다른 나라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인종주의자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테고요. 우리 사회의 인권, 차별, 통합 문제를 고민하는 정회옥 교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 한국인의 인종 콤플렉스를 들려줍니다. 인종 문제에 콤플렉스가 붙는다는 게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


인종과 관련해 경멸하여 부르는 '멸칭'. 짱깨, 쪽발이, 똥남아, 흑형, 외노자, 튀기, 개슬림... 한 번은 불러보았거나 들어본 단어들입니다. 평소엔 우스개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유명 스타에게 외국인들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할 땐 언론 보도로 들썩이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한국에 인종차별은 없다는 말을 당연시할 정도로 한국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회피하고 사회적으로도 비가시화된 상황임을 짚어주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저자는 한국식 인종주의가 언제, 왜 생겼는지 근현대사를 통해 하나씩 보여줍니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역사를 대면할수록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인종 차별과 혐오의 그림자를 만나게 됩니다. ​​


한국식 인종주의는 불평등조약으로 일방적인 개항 이후 비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서구 인종주의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서구의 인종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회 담론의 중요한 소통 통로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모두가 말입니다. 미국을 부강하고 경이로운 문명을 갖춘 나라로 그리며 미국 숭배에 진심인 행태를 보이는 보도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태생적 특징인 피부색을 절대시 하며 인종적 위계 의식을 품게 되는 인종주의는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문제는 위계적 인종 개념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겁니다.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비판의식도 마비시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과 한국인은 동병상련인데도 되려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고방식으로 많은 개화기 엘리트가 이렇게 서구의 인종 개념을 수용합니다. ​​미개한 조선인, 열등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국인. 이 열패감은 숭미사상과 함께 그래도 한국인이 흑인보다는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집단적 열등감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더욱 깊어집니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상적 차별이 한국인에게 자기비하, 수치심, 열등감으로 스며들었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한편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적 민족주의처럼 우리 내부에서 대두된 민족주의는 분노의 공동체가 되었고,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됩니다. 왜곡된 민족주의 서사는 단일민족, 우리와 그들로 구별하는 습관으로 이어지며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의 트라우마가 회복되기도 전에 한국전쟁으로 반공, 멸공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척합니다. 분단과 냉전으로 반공주의적 세계관을 적극 수용하였고, 반공교육으로 획일성과 배타성이 점철된 일원주의를 양산합니다. ​​





과대 성장한 국가의 개입 아래 경제적 성공에 가치 부여하는 근대화 서사에도 민족주의가 이용됩니다. 잘살아보세는 우리'만' 잘살아보자는 의미일 뿐, 경쟁 제일주의 아래에서 한민족은 이상한 방향으로 뭉치게 됩니다.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도 국가경쟁력 강화는 외부 민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교과서에 실려 달달 외워 시험 쳤고,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그 긴 문장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국민교육헌장. 개인은 희생되고 집단과 민족만 남은 '우리'의 시대였습니다. 내 엄마 대신 우리 엄마, 내 나라 대신 우리나라가 됩니다. '우리'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


2021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중국 84만 명 이상, 베트남 20만 명 이상, 태국 17만 명 이상, 미국 14만 명 이상... 193개국 중 110개국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친백인성이 있는 한국인에게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철저히 타자화되었습니다. ​저자는 한국인의 무의식에 스며든 한국식 인종주의가 발현되었음에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간 다양한 미디어 사례를 짚어줍니다. 한국 사회의 배타적 태도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상화된 차별과 배제를 보여줍니다. 반창고 색은 왜 베이지색인지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에 녹아있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수많은 편견과 혐오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


일본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을 향한 제노사이드처럼 이 땅에서도 제노사이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를 겁니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말이죠. 왜곡된 보도로 인해 당시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200여 명의 중국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타이완 국적의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화족과 달리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국계 중국인입니다. 하층 계급이라는 이미지로 계급 차별이 더해진 조선족.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인은 개인행동으로 국한해 비난하지만, 조선족일 경우 집단 전체를 비난합니다. 


혼혈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순결하지 못한 잡종이라는 폄하의 의미라고 합니다. 순혈주의 신화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극도의 배타성에 대해 들려줍니다. 다문화라는 단어도 우리는 왜곡해서 사용합니다. 서구 출신 백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하면 다문화로 여깁니다. 순수 한국인 가정은 일반 가족이고, 외국인이 포함되면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는 걸 망각한 채 외국인으로 타자화합니다. ​​


백인-한국인-흑인-동남아시아인으로 이어지는 인종적, 민족적 위계가 존재하는 한국. 백인 교수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주 노동자는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듯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시작해 중동 국가의 건설 노동자로 이미 한국인이 해외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했음에도 이제는 이 땅에서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점철된 무슬림도 있습니다.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으로 반무슬림 정서를 부추기는 언론 보도는 여전합니다. 이처럼 우리 안의 타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례를 낱낱이 짚어줍니다. ​​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둔감성을 지적한 <한 번은 불러보았다>. 식민의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이 아닌 아래 세대들에게 대물림되는 한국식 인종주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역사에서 한국인은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난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K-컬처라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으며 자부심과 만족감을 얻는 한국인들에게 왜곡된 우월감에 대한 경고를 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150여 년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며 한국식 인종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충격의 쓰나미를 맛봤습니다. 잘못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