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 1년간 혼자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을 삶의 태도들
매기 다운스 지음, 강유리 옮김 / 메이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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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1년간 17개국을 여행한 전직 신문사 기자 매기 다운스. 알츠하이머병 말기에 접어든 엄마를 두고 떠난 세계여행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원제 Braver Than You Think)>.


세 아이를 키우느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기억을 잃은 엄마. 10년간 기자 생활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남의 이야기만 전했을 뿐, 자신의 인생을 비좁은 사무실에 가두어 놓는다면 엄마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는 거라고 생각한 매기는 결심합니다. 엄마가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하지 못했던 아홉 가지 일을 버킷리스트로 작성해 하나씩 지워나가기로요. 


처음에는 엄마의 병을 외면했습니다. 내면의 상처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마주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다음에, 시간은 나중에 충분할 테니까'라는 말은 틀렸다는 걸 이젠 압니다. 여행을 위해 가진 것 대부분을 팔고 모아둔 돈도 없이 떠나게 되어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엄마가 등굣길에서 매일 해준 말 때문입니다. 이유는 몰라도 "넌 생각보다 강하단다."는 말을 해준 엄마 덕분입니다.


그런데 꽤 골 때리는 상황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결혼을 했거든요. 첫 여행지 페루는 남편과의 신혼여행이 된 셈입니다. 3주간 함께 그곳에서 보내며 잉카 트레일을 하고 엄마가 가고 싶어 했던 마추픽추에 섭니다. 영원함을 일깨워준 마추픽추였다고 합니다. 방치되었을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존 열대 우림 탐험 후 남편은 돌아갔고, 이제 진짜 혼자 여행의 시작입니다. 엄마를 잃게 된 깊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찾으러 길을 나선 거라는 목표조차 혼자라는 사실 앞에선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울감에 사로잡혀 허덕이다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볼리비아에서는 야생 동물 보호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합니다. 가까이서 원숭이를 보는 게 소원이었던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해결하러 말이죠. 평생 육체노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자원봉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안겨줍니다. 고통과 쾌감을 오가는 나날들을 보내며, 편안함은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진가를 온전히 깨닫기 마련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엄마가 언젠가 보여준 우유니 사막으로도 갑니다. 하지만 최악의 눈보라를 앞두고 위험과 마주쳤을 때 또 다른 깨달음을 얻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사는 데 따르는 위험일 뿐이라는 것을요. 엄마의 병도 그냥 일어난 거라고, 질책할 만한 요인이 없었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 아프리카에서는 엄마가 평생 해보고 싶어 했던 일 중의 하나인 사파리 여행도 하면서 보냅니다. 필요한 줄도 몰랐던 무언가를 이곳에서는 채워주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막막하고 소외감을 느꼈던 것에서 이제는 조금은 편안해지려고 합니다. 우간다의 한 농장에서는 라디오 디제이를 하며 자원봉사를 했고, 나일강 급류 래프팅을 하며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헤쳐나가는 용기를 얻습니다.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 이집트에 머물던 시기에 결국 엄마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러 집으로 돌아갔다가 보름 만에 다시 이집트로 돌아옵니다. 어떻게든 이 여행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추모하며 피라미드를 다시 거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이집트의 상황은 아랍의 봄이 시작되며 혼란에 빠집니다. 이집트를 간신히 빠져나가 요르단, 에티오피아를 거치며 매일 찾아오는 상실의 아픔을 조금씩 견뎌냅니다. 심리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유일한 선택지는 정면 돌파임을 깨닫습니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슬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고통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고통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걸 실감합니다. 흉터가 남더라도 고통의 시간을 잘 견대내고 싶어졌습니다. 인도에서 요가를 하면서, 태국에서 코끼리 보호 자원봉사를 하며,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도 들렀던 매기는 한층 성숙해져갑니다. 엄마는 이제 없지만 엄마의 말처럼 생각보다 강한 사람임을 증명해낸 겁니다. 1년의 여행 끝에 알게 된 깨달음을 생생한 여행기로 펼쳐 보인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그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애도했고, 엄마가 남겨주고 싶어 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낸 매기. 슬픔을 겪으며 단단해졌고, 낯선 세상과 만나며 더 단단해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세계여행하며 겪는 좌충우돌 여행기 정도로만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가 눈물 콧물 다 빼게 만든 책입니다. 엄마의 투병생활이 길어질수록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는 이야기를 만날 땐 깊은 슬픔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엄마가 남긴 유전자가 자신에게 발현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 유전자를 다시 내 아이에게 넘겨준다는 두려움을 가진 매기의 불안감에도 공감하며 읽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부딪혀 나가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1년간의 혼자 여행으로 얻은 매기. 정해놓은 직장도 없이 진로도 불투명했던 그가 이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후일담 에피소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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