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내 친척이나, 친구나 지인이 아니라 애들 엄마의 친척, 친구, 지인이다. 어느때인가, 어디에선가 잠깐씩만 만났던 인연이라 이름은 물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난 원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난치병, 아니 불치병에 걸린 터라, 내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몇몇 이들은 얼굴이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까지 기억해내진 못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만났던 사람이구나 기억해냈다. 이건 내 입장에선 기적에 가깝다.
어떤이들은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한다. 그럼 나도 머리를 굴리며 일단 아는 체를 한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역시 확실하게 언제, 어디서 만난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맞이하는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그정도가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한다면 제대로 해내길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나는 직업 정치인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지역구 어느 의원은 단 한 번 만난 이도 잘 기억해내더라.
나 같은 이는 장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잘 기억해서 자주 주문한 메뉴라던가, 취향을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텐데, 얼굴도 기억 못 할테니까.
최근 마을 활동가, 도시재생 활동가들을 자주 마주친다. 상대방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분명 낯익은 얼굴인데, 누군지 어디서 만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시 알게 될 계기가 생길테고, 일부는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잊혀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