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이런 말을 싫어하는 편인데, 가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한때는 말술이었어.", "나도 젊을 때는 체력이 엄청 좋았지.", "한때는 나도 인기 많았다구." 모두 과거 어느 시점을 지목하며 그땐 잘나갔다 뭐 이런 얘기다. 이런 꼰대같은 태도라니! 하지만 이 글의 시작도 이런 말로 해야겠다. 아무리 꼰대같아도 이건 사실이니까. 예전에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이게 뭐 자랑은 아니겠지만, 3일 연속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도 꼬박꼬박 출근했고, 일에 큰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 밤을 새웠다지만 새벽엔 술을 마시다 잠시 졸기도 했고, 출퇴근길, 외근길에 졸기도 했으니 아예 잠을 안 잤던 것은 아니다. 암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술마시면서 하루쯤 밤새는 건 뭐 큰일도 아니었으며, 이삼일씩 연속으로 밤새 술을 퍼마시기도 했다는 얘기. 술마실 때만 체력이 좋았던 건 아니다. 밤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몇 편 연속으로 보거나 하는 날도 자주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잠깐 졸고나면 나아지거나, 일상에 큰 영향이 없을 정도였다. 늦게까지 일을 해도 한두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다.
요즘 새삼 늙어간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밤새 술을 마시면 다음날 하루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청탁 받은 글을 쓰거나, 밀린 일을 하면서 새벽까지 버텨도, 예전처럼 능률도 안 오르고, 얼마 못가서 막 졸리고, 한 두시간 자고 일어나려면 억지로 몸은 일으키는데, 도무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밀린 일이 엄청나서 대략 두 달 가량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새벽까지 뭔가를 해야만 했다. 입안이 헐었다가 며칠만에 낫기도 했고, 코 속에 뭐가 나서 코가 붓기도 했고, 며칠 연속 가볍게 코피가 나기도 했고 도무지 몸이 못 버틴다는 신호가 계속 왔다. 그럼에도 나는 밤에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밀린 일의 압박이 너무 심했다. 지난 주부터는 아예 저녁 아홉시쯤 애들을 씻기고, 재우면서 나도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 한두시쯤 일어나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새고 바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정 피곤한 날엔 한 시간만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암튼 작년 연말에 이유없이 코 안이 헐어서 아직 낫질 않고 있는데, 해를 넘겨 붙들고 있는 일을 이번주 중에 꼭 끝내고 낫도록 해야겠다.
졸음운전 => 곡예운전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외근은 나가야 한다. 외근 일정이 잡힌 전날엔 가급적 평소보다는 많이 자려고 애쓰지만,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 피곤이 덜 풀린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날이 제법 많다. 오늘도 그랬다. 눈이 피곤해서 자꾸만 눈으로 손이 갔다. 시야가 평소보다 좁아졌고, 자주 흐려졌다. 춥다고 켜놓은 히터 때문에 더 졸음이 오는 듯했다. 올 겨울엔 정말 히터 켜놓고 달리다가 졸음 때문에 고생한 날이 제법 많다. 우리 집 차는 낡고 오래되어서 히터를 오래 켜놓아도 따뜻해지지 않기에 몰랐는데, 작년 초에 뽑은 회사 차는 히터가 굉장히 빵빵하다. 히터를 켜놓으면 졸리다는 사실을 이번 겨울에 처음 깨달았는데, 그 뒤로 여러번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히터를 끄면 손, 발이 시려워서 또 괴롭다. 껌이 있으면 좀 나은데, 뭔가 씹을 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슬슬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러다 사고 나는거 아닌가 싶다. 빠른 음악을 크게 켜놓아도 별 소용이 없다.
이럴때 최후의 수단은 차라리 속도를 높이고 차들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는거다. 속도를 높이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인지,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자꾸만 감기고 흐려지던 눈도 번쩍 뜨인다. 눈을 부릅뜨고 차들 사이의 간격을 잘 살피고, 머리로는 끝없이 내 차의 속도와 앞, 뒤, 옆 차들의 속도를 계산하면서 차들을 제치고 나갈 길을 계산한다. 저절로 허리가 반듯하게 펴지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엑셀을 밟은 발에도 힘이 들어간다.
이 속도로 달리면서 자칫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즉,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긴장감에 절로 잠이 깬다. 이 방법의 최대 단점은 정체 지역과 구간속도단속 지역에서는 쓸 수가 없다는 점이고, 우리 집 차처럼 낡고 오래되어서 차의 성능이 따라주지 않으면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차처럼 성능이 좋은 차로 그닥 막힐 일이 없는 도로를 달리면 졸음 따위 금방 쫓아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이 커야한다. 아니 배짱이 좋아야 한다고 표현해야하나?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속도를 팍 줄이거나, 각도를 틀어 스치듯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좋고, 운전 실력도 좋아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졸음을 쫓았고, 덕분에 거래처와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관심 신간
요새는 통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을 보면 자꾸 책 욕심이 든다.
음, 한동안 책을 안사다가 오랜만에 나한테 주는 선물처럼 좀 비싼 책을 사면 안될까?
암튼 일단 관심이 가는 책들을 기록해두어야 겠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데려와야지!
이 글을 써놓고, 책 표지를 집어넣고 보니, 피터 싱어의 책 제목이 나에게 묻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