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있다면, 녹색 이매진 시시각각 1
최백순 지음 / 이매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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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설날,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를 봤다. 늘 가던 친척 어른댁에 안 가게 되어 갑자기 시간이 남았는데, 마땅히 할 일은 없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밀라 요보비치의 얼굴이 그려진 극장 간판을 보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2011년 가을, 밀라 요보비치 못지않은 미모에 잔 다르크로 불렸던, 페트라 켈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때였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었기에 잔 다르크라고 불렸는지.

 

잔 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 말기에 궁지에 몰린 프랑스를 단숨에 일으켜 세운 영웅이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간 프랑스 땅을 휩쓴 전쟁 덕분에 대다수 민중들은 어려운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었다. 천사의 계시를 들었다는 16세의 소녀는 기적과도 같은 승리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잔 다르크는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

 

197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녹색당의 전신인 SPV(Sonstige Politische Vereinigung) 만들어지고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때, 페트라 켈리는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SPV에 참여했던 여러 단위들에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음에도 그가 비례 1번이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70년대 반핵, 평화운동 진영에서 그가 국제적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린 것도 이유일 테고, 68혁명의 상징인 루디 두치케와 함께 제도권 정당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정당이었기에 젊고 참신한 인물을 내세웠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1980년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2개 주(브레멘 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고 또 1982년 3개 주(니더작센 주, 함부르크 주, 헤센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기까지 켈리는 당을 대표해 많은 활동을 했다. 1983년 연방의회에 27명의 의원을 보내면서 그 자신이 연방의원이 되었다. 이때 이미 녹색당이란 이름은 자연스레 페트라 켈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켈리 역시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쟁의 시대, 핵발전의 시대에 평화와 반핵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이름. 도무지 승산이 없을 것만 같은 제도권 정치에 겁 없이 뛰어들어 기적과도 같은 연방의회 진출을 얻어낸 이름. 과연 잔 다르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 녹색당은 1998년 적록연정이라 불리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집권당으로서 다양한 환경정책을 실현했다.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통해 궁극적으로 탈핵을 이룰 것을 천명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연방법에 올렸다. 또한 캔과 병 제품에 환경부담금을 매기는 ‘반 공해법’을 시행하는 등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펼쳤다. 독일녹색당의 활약상을 전해 들을 때마다 부러움과 막막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까? 개그가 따로 없는 정치 현실을 볼 때마다 그런 희망은 쉽게 절망으로 바뀐다.

 

10월 1일은 페트라 켈리의 기일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4대강의 녹조는 해결되지 못하고,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는 이 가을, 페트라 켈리를 기억하며 이 땅에도 새로운 정치, 녹색 정치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9월 말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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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죠.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잖아요.^^

감은빛 2013-11-13 14:07   좋아요 0 | URL
저는 종종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희망을 가지려면 현재의 조건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보아야하는데,
도무지 가능성이 보이질 않으니 말예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에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치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 시절에는 정말 날카롭고 씨니컬한 편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희망을 놓아버렸다.
이 지구와 인류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더니,
오히려 그냥 나라도 하고싶은대로 행동하겠다 생각이 들었고,
이전보다 많이 밝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