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숲요일
김수나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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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 ‘맴맴’이 아닌 ‘쎄~~~’ 하고 길게 울어제끼는 매미 소리가 귀를 찌른다. 눈부신 모래 운동장엔 파리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운동장 한 켠 커다란 나무 밑 그늘에 인간과 모기와 하루살이와 이름 모를 나방과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나무에 기대어 물을 홀짝이며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데, 아이들이 달려온다. 저 녀석들은 덥지도 않나? 아이들은 내게 함께 놀자고 조른다. 방금까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육체노동을 한 후라, 도무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내 팔을 잡아 끈다.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나이도 제 각각인 듯 키 차이가 제법 났다. 누군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어색하게 보자기를 냈다가 술래가 되고 말았다. 커다란 나무 몸통에 얼굴을 대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소리를 냈다. “무. 궁. 화. 꽃. 이.” 그 다음 잠시 뜸을 들이다가 휘몰아치듯 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동작을 멈추었다.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은 녀석들이 있는가하면 당차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늘 경계에 있는 아이는 표정까지는 볼 수 없었다. 나무 그늘 밖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실눈을 뜨고 봐도 그 아이의 표정과 자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아이들이 모두 멈춰버린 순간이었다. 때마침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 마저 멈춰버려 세상은 고요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 순간이 떠올랐다. 159쪽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글 첫 문장이 바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였고, 파란글씨의 도입부분 아래 본문의 첫 문장은 ‘거기 여름이 잠시 멈춰있다.’ 였다. 그랬다. 그 날, 그 순간 내게도 잠시 세상이 멈춰있었다.

 

이 책은 여행기다. 저자가 4계절 동안 도시 근교에서 이름난 여행지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닌 감상을 엮은 것이다. 저자 특유의 감성이 묻어있는 글과 눈길을 끄는 좋은 사진들이 엮인 책. 읽다가 반가운 장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부암동과 성북동, 서울성곽길은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고, 수원 화성은 몇 차례 찾았던, 기회가 되면 느긋하게 걸어보고픈 길이었다. 천리포 수목원과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역시 여유있게 만끽하고픈 공간들이다.

 

책을 읽다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 본문 아래쪽에 표시된 ‘쪽수’가 안보였다. 평소 책갈피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라서, 책을 읽다 접을 때는 항상 쪽수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펼쳐서 읽곤 하는데,(물론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라, 앞 뒤 쪽을 살펴가며 다시 찾아야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을 덮으려는데, 쪽수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도대체 몇 쪽인거냐? 그런데 나중에 의외의 공간에서 쪽수를 발견했다. 왼쪽 위에 있었다. 대개 쪽수가 아래쪽에 있는 경우에는 왼쪽 면에는 왼쪽으로 치우쳐서, 오른쪽 면에는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쪽수를 넣는데, 이 책엔 일관되게 왼쪽 위에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건 왼쪽 그러니까 짝수 면에는 그냥 숫자만 넣고, 오른쪽 홀수 면에는 숫자 앞에 동그라미를 하나 붙여 놓았다. 나름 신경써서 디자인한 부분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불편했다.

 

책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도시 속 힐링스팟’과 ‘자연요리 레시피’를 실어놓았다. 아무리 부록이라도 조금 성의가 없어보이는 모양인데, 구색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넣은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솔직히 ‘힐링스팟’의 경우 인터넷 검색으로 그보다 더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데 그렇게 실어놓은 것은 이유는 과연 뭘까? 오히려 안 싣는 것이 더 나았겠다 싶다.

 

『수요일은 숲요일』이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에 매여있는 신세라 주말이 아닌 평일 하루를 빼서 자연을 찾아 걸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좀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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