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접히지 않는 우산 

분명히 낮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퇴근하려고 나서니, 쏴~ 쏟아진다. 올해처럼 비가 퍼붓는 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 말처럼 이건 '아열대 기후'도 아닌 '열대 우림 기후'란 말이다!(여기서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 어느 노래 가사가 자동으로 머리속에서 한번 플레이 되었다.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 열대 우림 기후 속에 살고있나') 이 비를 뚫고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오르막 길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벌써 온 몸이 다 땀으로 젖은 듯한 기분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시계를 들여다보고 시간 계산을 해봤다.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문서 정리를 좀 더 해놓자는 생각에 평소보다 조금 퇴근이 늦었다. 열심히 달려가도 아이들은 평소보다 한참 더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 오늘 따라 유난히 지하철이 늦게 오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마침내 도착한 열차에 올라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책을 꺼내 읽을까 하다가 손에 든 우산 때문에 서서 책을 읽기는 좀 불편했다. 그냥 음악만 들으며 가기로 했다.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나이가 조금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우산을 펼친채로 열차에 올랐다. 대번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주머니는 우산을 접어보려고 무지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혼잣말로 계속 우산이 고장난 것 같다고 중얼거리며 우산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계셨다. 옆에서 보기에도 분명히 고장이 나긴 했는데, 그렇다고 우산이 접히지 않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지하철에 사람은 많았다. 펼쳐친 우산이 무척 거슬렸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누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슬쩍 주위에 서 있거나 앉아있는 젊은 남성들, 아저씨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도와줄 기세는 아니었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궁금해서 잠시 아주머니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우산 맨 윗부분을 힘으로 억지로라도 잡아 내리면 우산이 접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듣고 있던 음악을 끄고, 여전히 낑낑대고 계신 아주머니께 한발 다가가서 '제가 한번 해볼게요' 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반가운 표정으로 우산을 건넸다. 이미 고장난 우산이니 눈치볼 것 없이 힘으로라도 우산을 접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팔에 힘을 주었는데, 이게 왠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자동 우산이라서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면 그냥 접히는데 지금은 고장나서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그제서야 이 우산이 무척 튼튼하고 비싼 우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우산들은 조금만 힘을 줘도 가느다란 살이 잘 휘고, 쉽게 망가지는데, 이 우산은 살이 두껍고 튼튼해서 아무리 용을 써봐도 접히거나 구부려지지 않았다. 이거 괜히 나섰다가 체면만 구기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결국 몇 차례 더 힘을 써보다가 나도 아주머니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접히지 않는 우산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고장난 버린 우산, 접혀야 하는 상황에서 접히지 않는 우산. 문득 지금 내 처지가 저 우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딘가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고장나버린 것 같은 느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해 곧 버려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나를 고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곳이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경쟁하듯이 열차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나도 그 틈바구니에 몸을 던져 열심히 발을 놀렸다. 시계를 보니 이미 한참 늦은 시간이다.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향해 1초라도 더 빨리 도착하고자 자꾸만 무거워지는 발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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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1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날의 가벼운 단상이라고만 하기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히는 글이네요.
날이 정말 이상해요. 겨울은 너무 추웠고 여름엔 비가 너무 오네요...
휴가는 다녀오신거예요?

감은빛 2011-08-18 12:13   좋아요 0 | URL
휴가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죠.
드디어 지겹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나네요.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2011-08-13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8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