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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여성이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표지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표지는 무척 공을 들여서 제작한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오래된 종이 느낌이 나는 광택이 없는 재질으로 되어 있고, 사진 부분만 광택이 나는 반질반질한 재질이다. 즉 부분적으로 코팅이 되어 있다. 요즘은 책 표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돈을 많이 들이는 추세인 듯 한데, 이 책이 딱 그 전형을 보유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의 경우 사진의 느낌을 잘 살린 좋은 표지임이 틀림없으니까.
사실 실제로 읽기 전에는 좀 더 사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리고 '경성, 사진에 박히다'가 제목인 만큼 서울 구석구석의 옛 사진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잘못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이 많다기 보다는 옛 신문기사가 많았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한국의 근대, 즉 식민지 조선의 몇몇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좀 무거운 느낌이 든다.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작가가 굳이 이렇듯 무거운 느낌으로 글을 풀어간 이유가 궁금하다. 책의 내용은 무겁지 않으나, 문체는 무겁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옛 신문기사의 인용도 처음에 몇 개를 읽을 때는 재밌지만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진다. 책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쓰기를 했더라면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는데 사진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주로 알려주고 있다. 특히 안창남이라는 비행사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고, 1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한용운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표가 인상적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유관순의 수형기록표도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사진관의 등장과 대중화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홍경이란 여성사진사와 남편 채상묵이 함께 운영한 사진관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의 표지사진으로 쓰인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도 이 부부가 운영하는 경성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3부에서는 사진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인데도 이상하게 가장 재미가 없었다.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달랐더라면 아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4부에서는 사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을 이야기한다. 사진결혼이란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에로사진에 대한 부분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교훈은 사진은 그것을 찍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 기록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료로써 사진은 흔히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림이나 글과 달리 눈에 보이는 대로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으로 보는 옛 모습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찍는 사람에 의해 한번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과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때에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네번째 특집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이 유명한 사진은 이전에도 이미 여러본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것이 일본 사진사에 의해 연출된 사진임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여성이 실제로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진이 연출된 것임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의 가설처럼 당시에 여성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기 편하기 위해 혹은 짧은 저고리가 유행이어서 사진처럼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이런 연출사진을 찍어서 널리 유통시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림과 사진이 있다면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림과 달리 사진은 훨씬 더 다양한 모습들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사진에 얽힌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다만 다음에는 좀 더 읽기 쉬운 글과 더 많은 사진들과 함께 하는 책으로 작가를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