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지금까지 두 명의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첫 남자친구는 아이의 첫번째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같은반(아이들은 나이별로 반을 나눈다. 그러니 같은 나이라는 소리다.)인 남자아이중에 제일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다. 둘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부터 엄청 친해져서는 아침에 아이를 데려가면 남자아이가 뛰쳐나와서 서로 반겨주고, 저녁에 데리러갈때까지 꼭 붙어있었다. 그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나 아이들 사이에서도 거의 공식커플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제 고모의 결혼식에 한번 다녀온 다음부터는 틈만나면 머리에 손수건을 덮어쓰고는 '딴딴따단 딴딴따단 ~~'하고 둘이서 결혼식 흉내를 내곤 했다고 선생님들은 전했다. 그렇게 1년넘게 친하게 지내다가 그 남자아이를 비롯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졌다.(도중에 어린이집 원장이 바뀌면서 선생님들이 자주 교체되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옮겨버렸다!) 전혀 상황을 모르고 있던 탓에 우리 아이만 혼자서 한 달을 더 다녔다. 친구도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동생들이랑 함께 지내면서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동안 아이엄마랑 나랑 열심히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공식커플이었던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새로 옮겨간 어린이집 원장이 알고보니 교육자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카테고리 아랫쪽의 글들을 보면 이전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 원장과는 아직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자신이 잘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안면몰수하고, 오히려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무척 화가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원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간이 덜되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데, 그 나이가 되도록(나이가 많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엄마이고, 어린이집의 원장을 할 정도의 나이니까 하는 소리다!) 인간이 될 기회를 못 가졌다는 사실에 인간적 연민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원장보다는 그 밑에 있는 선생들이, 선생들보다는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들이 더 불쌍하다! 무엇보다 가장 불쌍한 건 그 인간이 덜된 원장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부모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협박하는 원장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야기가 잠시 새버렸는데, 암튼 그렇게 헤어져 있던 두 아이는 세 달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 아이가 그 남자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두 아이는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다녔던 어린이집과 달리 여기는 규모가 굉장히 큰 곳이어서 같은 나이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반이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고 먼저 들어온 남자아이와 뒤에 들어온 우리아이는 다른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둘이 예전 어린이집에서 공식커플이었다는 사실이 여기 어린이집에도 알려져 있었다.
내가 여기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처음으로 데려간 날 아침, 아이는 낯선 방(교실)과 낯선 선생님들 그리고 낯선 친구들에 둘러쌓여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옆반 선생님이 그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우리 아이는 아는 얼굴을 만나자(그것도 늘 붙어다녔고, 딴딴따단도 수십번 했던 남자친구가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울음을 그치고 다가가서 껴안았다. 마치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오랫만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으니 반가울듯한데 그저그런 표정이었다. 우리 아이가 자꾸만 그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려하고 껴안으려 하는데 반해 그 남자아이는 뻣뻣하게 서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온 옆반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그러나 복도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요새 같은 반의 어느 여자아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지지말라고 응원을 해줬다. 기필코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고 선생님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린이집을 나왔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서 두 달째 되는 요즘 우리 아이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들에 의하면 아이랑 같은 반에 예쁘장하게 생긴 어느 남자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가 요즘 그 남자아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 남자아이 이름을 대고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종종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아이의 이름을 대면서 요즘 자주 만나냐고 물었는데, 못 본다는 대답이 계속 돌아왔다. 아이는 어느새 옛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선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갔더니 원감님이 아이를 데리고 계셨다. 원감님이 나를 붙들고는 '아버님 어떡해요. 이젠 ㅇㅇ(옛사랑)은 안좋아하고 ㅁㅁ(새로운 사랑)만 좋아한대요. 제가 순서를 바꿔가면서 열번도 넘게 물어봤더니 계속 ㅁㅁ만 좋아한다고 하네요.'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이에게 남자친구랑 엄마랑 아빠중에 누가 제일 좋은지 물어봤다. 아이는 남자친구가 제일 좋고, 그다음으로 엄마가 좋고, 그 다음에 아빠가 좋단다. 내가 제일 꼴찌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아빠보다 남자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