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등 아무리 찬사를 바쳐도 모자랄 명작을 써낸 작가. 이 작품은 그가 이탈리아의 주간지 <에스프레소> 등에 발표한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언제였던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군대를 안다녀오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먼저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해있던 한 여자동기가 추천해 준 책이다. 잘난척이 몸에 밴 녀석이었는데, 특유의 말투로 '어떻게 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수 있을지 직접 읽어보고 한번 확인해봐!' 라고 말했다. 그래서 꼭 한번 읽어야지 벼르고 있다가 몇 년 전 마침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읽었다.

책은 1,2,3,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길고 짧은 글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세계적인 언어의 마술사로 소문난 움베르토 에코의 글인 만큼 절대로 재미없을 수는 없겠지만(혹 재미없었다면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어려울 수는 있겠다 싶어서 걱정했는데, 어려운 것도 어려운거지만 그보다 이탈리아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지식이 없어 조금 헤매어야 했다. 그리고 유럽인의 전반적인 정서라던가 생활문화라던가 그런 것들을 이해해야 재밌는 꼭지들도 제법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 무척 아쉬웠다. 내 기준에서 1부와 2부는 재미있었지만, 3부는 좀 어려웠고, 4부는 그냥 읽을만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과 같은 몇몇 꼭지들은 무척 흥미롭고 인상적이어서 대략의 내용을 외울만큼 읽었다가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할 만큼 재밌다.

그리고 번역말인데, 책 마지막에 번역자 이세욱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듯이 이 책은 처음에 미국판을 번역한 책이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의 원본인 미국판 자체가 원판의 내용을 충실히 전해주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단다. 나중에 프랑스어판이 나왔는데, 이 쪽의 번역이 훨씬 나아서 지금 나온 이 번역은 이탈리아 원판과 프랑스어판을 원본으로 했다고 한다. 앞서 미국판을 번역한 책은 절판되었다고 하는데,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책의 번역의 수준은 상당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책에 번역까지 엉망이라면 최악이 아닌가.(실제로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번역서들은 대부분 딱 이모양새다!)

전체적으로 여러번 읽었고, 재밌는 꼭지들은 수십번도 넘게 읽었지만 아직도 이 책은 낯설고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떻게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수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거의 만나지 못한 그 동기녀석을 우연히라도 만나게된다면 꼭 다시 물어봐야 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거냐구?'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선뜻 손이가지 않는 책이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한번씩 읽기에는 좋은 책인 듯하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학술적이지 않으면서 재밌고 적절한 유머들을 던져주는 책. 지적 유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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