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
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


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 


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


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


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 


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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