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1
지난 주였다. 아침에 겨우 피곤을 물리치고 일어나 힘겹게 씻으러 갔다. 급하게 서둘러 씻고, 이제 면도를 하는 중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급한 연락이라 씻다 말고 한참을 통화하고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회의 시간이 간당간당해서 뛰었다. 간신히 회의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해 회의를 했고, 회의를 다 마치고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뺨과 턱과 양쪽 입술 옆의 수염은 다 밀었는데, 콧수염을 덜 밀었다. 아예 안 깎은 것은 아니고, 위에서 내리는 방향으로 한 번은 밀었는데, 밑에서 올리는 방향으로 다시 여러번 조심조심 밀어야 하는데, 그때 하필 전화가 왔고, 전화를 끊자마자 이러다 늦겠다 싶어서 허둥주둥 나왔다.
이러고 뛰고, 버스를 타고, 또 뛰어서 회의 장소로 왔구나. 아! 그때까지는 마스크를 써서 사람들이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회의 장소에서는 서로 충분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기에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왜 면도를 하다 말고 왔지? 혹시 수염을 기르려고 그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분명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아무도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준 이는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예비용으로 사무실에 놓아둔 면도기로 남은 수염을 밀었다. 참! 살다보니 별 실수를 다 하는 구나.
실수2
일요일 저녁이었다.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나가 일할 생각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다 마치지 못한 일을 다 마치고 월요일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금요일 저녁에 보내도 월요일 아침에 확인할테고, 일요일 밤에 보내도 월요일 아침에 확인할테니.
아이 손을 잡고 걸어서 애들 엄마 집으로 가서, 아이랑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천천히 할일들을 정리하면서 사무실로 걸었다. 미리 머리속으로 정리해 둔 내용들을 도착하자마자 다다다다 두드리기만 하면 빨리 끝나겠지.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와 운동하고 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사무실까지 약 5분 남았을 때, 문득 깨달았다. 사무실 열쇠가 어디 있었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열쇠는 금요일에 출근할 때 입었던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사무실에 나가서 일할 생각이었으면 당연히 열쇠부터 챙겼어야 했는데, 열쇠도 없이 사무실에 어찌 들어간단 말이냐!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갑자기 힘이 확 빠져서 걸을 힘도 없었다. 여태 걸어오면서 정리해 놓은 내용들도 문득 머릿속에서 휙 사라져갔다.
그렇게 집에서 애들엄마 집으로, 거기서 다시 사무실까지 5분 거리에 있는 어느 골목길로, 거기서 다시 집으로 한시간 하고도 20분 가량을 걸었다. 저녁 산책이라 치기에도 제법 먼 거리였다. 집에 도착해서 땀에 젖은 옷을 벗으며 고민했다.
1. 샤워를 하고 열쇠를 챙겨 사무실을 향한다. / 이미 너무 지쳤다.
2. 샤워를 하고 그냥 잔다. 일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한다. / 이미 마음은 누웠다.
3. 이왕 땀을 흘렸으니 샤워하기 전에 운동을 조금 하고 샤워한다. / 지쳤지만 일단 운동은 조금 하자.
땀에 젖은 옷은 다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하니 관절도 하나도 안 아프고 평소 잘 안 되던 동작들도 너무 잘 되고, 새로 산 케틀벨과 불가리안백을 휘두르는 일이 너무 재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평소보다 훨씬 오래 운동을 하고서야 몸을 씻었다.
운동을 하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뒤져 가볍게 먹을 것을 장만했다. 다 먹고 배를 두들기며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서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이 시간에 잠들어서 새벽에 일어나기는 글렀다. 특히 많이 걷기도 했고, 운동으로 지친 몸이 과연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잠들었다.
실수3
그리고 그 월요일 아침인 어제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강의가 있었다. 다행히 새벽에 깨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다. 그러나 일의 효율이 떨어져서 생각했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강의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오전 강의가 무려 3시간 연강이었고, 오후에도 4시간 연강이었지만, 오후엔 현장 견학 프로그램이라 이동시간이 있었다.
오전 강의 2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어서 3시간째 강의를 시작했고, 강의를 다 마친 후에는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다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헉!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 아마 2시간째 마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깜빡했던 것 같다. 깜빡할 일이 따로있지! 그럼 셋째 시간 강의 내내 열려있었다는 얘긴데, 강의장에 있던 삼십여명이 모두 봤다는 얘긴데. 앞에서 강의하는 내 전신을 보면서 이걸 못 봤을 리는 없을텐데, 그런데 왜 아무도 얘길 안 해줬지?
다행히 바지의 구조 상 속옷일 보이진 않았을 것 같고, 그저 열린 상태의 지퍼만 살짝 보였을 것 같은데,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안 볼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오후에도 내내 붙어 있어야 했고, 심지어 다음날인 화요일(글을 쓰는 오늘이다.) 오전에도 3시간을 같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뭐, 지난 일을 어쩌겠나? 정말 오늘 둘째날 강의를 마칠 때까지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해줘서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다.
요즘 왜 이리 실수가 많나! 나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