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D-1
이사할 때마다 제일 큰 짐은 항상 책이다. 약 2년전 애들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올 때 책장 3개와 그 책장들을 꽉 채우고도 훨씬 많이 남는 책들을 갖고 나왔고, 당시 이사를 도와주던 후배는 책들 좀 버리라며 엄청 힘들어했다.
그 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옮길때엔, 수십여권의 책을 버리거나 팔아서 겨우 책장 한 칸 빈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책은 또 늘어났고, 이번 이사를 앞두고 한 사십여권 팔거나 버렸으나, 책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차를 빌릴 곳도 없고, 짐도 더 많이 늘었고, 도와줄 후배도 한 명 밖에 없어서 이사짐센터에 전화해 1톤 트럭을 구했다. 책이 좀 많다고 하니, 아저씨는 보지도 않고 한숨부터 내쉰다. 짐을 미리 다 싸둬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길래, 주말동안 미리 책을 싸두고 오늘 밤 나머지 짐을 싸려고 했다. 혼자서 다 해낼 자신이 없어서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도 이번 주말 이사할 예정인데, 본인 짐을 먼저 어느정도 싸놓고, 일요일 오후 우리집으로 왔다.
친구와 함깨 책을 싸려고 하니, 방이 좁아서 먼저 실내철봉을 분리해야 했다. 난 철봉을 분리하고, 친구는 책을 싸기 시작했다. 책장엔 내 나름의 분류대로 책이 꽂혀있었는데, 책을 싸려면 크기별로 맞춰야 하니, 분류를 무시하고 그냥 싸라고 했다. 친구의 속도는 빨랐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책을 싸다가 오랜만에 손에 드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추억에 빠지거나, 책장을 들춰 읽곤 했을 것이고, 그러다 훌쩍 시간을 보내고, 하루가 다 지나도록 반도 못 끝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녁이 될 무렵 책을 거의 싸놓은 건 순전히 친구의 공이었다. 도중에 박스가 모자라 근처 큰 슈퍼와 작은 마트와 편의점들을 돌았는데, 대부분 폐지 모으는 할아버지와 계약이 되어있다며, 박스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간신히 몇 개를 구해서 대부분의 책을 포장해서 쌓아놓았다.
이제 겨우 책만 싸놓았을 뿐이지만, 다른 큰 짐이 별로 없는 내 입장에선 이사짐을 다 싼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생한 친구에게 고맙다고 회를 샀다. 회를 먹다보니 술을 마셨고, 술이 한 잔 들어가니 또 술이 술을 불러서 원래 의도와 달리 좀 많이 마셨다. 이제 하루 남았다.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해서 나머지 짐을 싸고, 내일 아침 에 짐을 실으면 이제 이 집은 영영 안녕이다. 지긋지긋한 반지하! 다시는 반지하에 살지 않으리라. 집을 나오면서부터 세번째 이사다. 앞으로 또 얼마나 자주 이사를 하려나. 앞으로 얼마나 많이 책을 싸고 또 풀어야 하려나.
또 책 욕심
전철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훓어보는데, 앞에선 아저씨 뒤편으로 등산 가방 하나가 위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자세히보니 한 중년 여성이 기마자세처럼 반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스퀏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등산복에 등산 가방을 멘 걸 보면 산을 오르려고 이동하는 듯한데, 준비운동으로 전철 안에서 스퀏을 하는 건가? 어차피 등산을 할 거라면 산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는 정도로 몸풀기는 충분할텐데, 왜 굳이 사람 많은 출근길 전철 안에서 스퀏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궁금했다. 게다가 에어스퀏이라고 부르는 맨몸 스퀏 자세도 틀렸다. 엉거주춤 기마자세에서 멈췄다 다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와 발 뒷굼치가 닿을만큼 완전히 쪼그려 않았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바른 자세다. 어쨌거나 그는 한동안 더 오르내리능 과정에서 자꾸 주위 사람들과 몸이 닿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 분 과연 혼잡한 전철 아안에서 스퀏을 할만큼 운동이 절박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는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몇 시간동안 책을 싸면서 진짜 책이 많구나. 난 언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고, 앞으로 책을 좀 적게 사야지 생각했건만, 또 책을 보관함에 담고 있는ㅍ내 모습을 본다. 이사한 집에선 여기서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어야지. 이 다짐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