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본론에 접어듭니다.
제가 잔소리가 많아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 잔소리가,
정작 기자가 돼서 선배들에게 새벽부터 싫은 소리(때로는
육두 문자도 난무합니다)를 덜 들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1) '기사가 된다'는 전제에서 취재하라.
때로 취재 지시를 받으면 "이게 무슨 기사꺼리냐?"는 식으로 대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로는 절대 기사를 작성할 수 없습니다. 기사가
안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그 기자에게는 기사꺼리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 자신 이 점에서 중요한 좌절을 맛본 적 있습니다. 87년 겨울
올챙이 기자 시절이었습니다. 서울시내 터널의 공기 오염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를 찾아 갔습니다.
그 교수는, 전문가답게 복잡한 전제를 두더니 죽고 사는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한참 설명을 듣고 나서 나름대로 결론내렸습니다. 아직
기사화하기는 어렵다고. 그리고는 취재 결과를 기사화하기는
어렵다고 보고서를 썼습니다. 며칠후 한국일보에는 사회면 머릿
기사로 바로 같은 교수의 연구결과를 인용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시기에 입사한 언론사 동기의 기사였습니다. 결국
저는 취재는 먼저 하고도 물먹는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2) 반드시 현장에 가라
기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현장에 가라고 저는 말합니다.
1999년 권노갑 전 국민회의 부총재,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 김상현
국민회의 고문 세 사람이 골프를 같이 쳤습니다. 일단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뜻이라면, 취재기자는 가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자들이 '골프치며 잡담하는데 왜 가?' 하면서
현장 취재를 하지 않았습니다.(휴일이었습니다). 결국 정치부
초년병인 KBS 여기자가 신문 방송, 통신을 통틀어 유일한 취재 기자가 돼 버렸습니다.
적어도 현장에 온 세 정치인과 그들의 보좌진은 이 여기자를 기억할
겁니다. 실제로 권노갑씨가 그날 그 여기자에게 "KBS 기자라고?"
확인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이 초년병 여기자의 능력으로는 몇 달이 지나도록 아마 세 사람중 단 한 사람도 이른바 '독대'를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세 사람 누구에게도 자신을 각인시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장을 갔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자리나마 세 사람을
한꺼번에 독대하는 어려운 자리를 얻게 된 것이고 아마도 그 세
사람과 보좌진들은 이 여기자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3) 인터뷰는 반드시 본인이 하라.
방송 기자 가운데 게으른 사람들은 동료 기자에게 인터뷰를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섭외가 귀찮고(신문 기자라면
섭외 단계에서 취재가 끝나는 셈이 됩니다.),카메라맨과 일정을
조정하기도 귀찮고 자신이 움직이기는 더욱 귀찮고 그래서
동료들에게 미루는 거지요.
그러나 조금 귀찮더라도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서 얻는 정보량은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얻는 정보보다 훨씬
값지고 알찬 경우가 많은 법입니다. 또 취재원의 생각을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입장을 떠나서 보다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고민이나 견해를 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면의 이야기를 듣는
행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취재원과 한번이라도 더 접촉하게 되고, 섭외하는 과정에서
취재원의 행동 반경도 상당히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 인터뷰가
쉬워지는 것도 물론이고요. 취재원도 기자를 더 확실하게 기억하게
됩니다.
자민련의 김학원 의원은 96년 총선 전 자신을 인터뷰한 kbs의 한
기자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자는 왜 김학원 의원이
자신을 기억하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있는데.... 신문 기자들이 전화
취재로 이름을 알린다면 방송 기자는 대면 인터뷰로 이름을 알립니다.
(4) 불만있는 자에게 취재하라.
제임즈 레스턴은 70년대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뉴욕 타임즈
편집국장이었습니다. 독창적이고 여론을 주도하는 칼럼으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초년병 시절레스턴은 유엔 창립 과정을
취재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유엔이 창설될 당시 2차 대전의 5대 승전국,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이 기구와 권한의 배분을 놓고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유색 인종국인 중국 대표가 논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협상 과정에서 불만이 많았겠지요.
레스턴은 중국 대표를 잘 구워삶아 거의 모든 협상 관련 서류를
얻었고 협상이 한 단계씩 진행될 때마다 뒷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발성 특종 정도가 아니라 연속 특종을 기록한 것이죠. 세계적인
언론인 레스턴의 특출함이 빛을 발한 것이죠.
예컨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면 기본적인 사항은 지방 자치
단체에서 취재할 수 있겠지만 기막힌 사연들은 그런 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복수의 당사자가 있는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5) 스스로 취재원의 입장에 서 보라.
잘못 이해한다면, '취재원과의 유착'을 초래한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취재원과는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야 비판적인
보도가 가능하다고 저 자신이 말씀드린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제 진의는 조금 다릅니다.
즉, 주어진 상황에서 취재원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대두됐다고
가정합시다. 그럴 때, 기자가 취재원의 입장에서 선택지를 골라 보는
것입니다.
물론 기자가 알 수 없는, 취재원만이 독점한 정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취재 기자의 전망이나 예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지적인 능력이나 사회적 경험이 취재 기자보다는
취재원이 월등하게 앞서기 때문에 판단의 능력 자체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훈련은 기자의 성장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런 훈련을 해서 취재 기자의 예상이 적중한다면 그 자체로
성공입니다. 틀린다 해도 왜 틀렸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성장해 갑니다.
자신이 취재하지 못한 정보가 무엇인지, 자신이 가진 정보 가운데
판단과정에서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지, 고려했다고 하더라도
경중이나 우선 순위의 판단에 오류는 없었는지 반성하면서 말이지요.
아마도 그는 차후에는 똑같은 실수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먼 훗날에는, 주어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후배들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도 있게 되지요. 이런 훈련은 비단 기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의사 결정에 있어서 같은 원칙이 적용될
것입니다.
(6)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와 상의하는 겁니다.
선배나 동료들에게 취재 내용 자체를 얻어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취재한 결과가 미진한지, 취재한 결과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는 상의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선배와 상의한다면, 그 과정에서
선배와의 인격적인 만남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리포트를 할 때 가능하다면 스탠드업을 하십시오
스탠드업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시간 전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스탠드업은 기자가 자신의 책임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언급하는 것이며,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이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미리 인터뷰를 섭외하면서 문제점이나 강조점을 충분히 연구해고
스탠드업의 멘트를 구상해 두어야 합니다. 데스크와도 반드시
상의해야 합니다. 장소도 미리 물색해 두고, 카메라맨과도 사전에
상의해야 합니다.
무척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당일 제작하는 우리 방송
시스템으로서는 스탠드업이 매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