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확실한 사실(fact)에 입각해서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재는 발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사스마리(샤츠마와리[察廻]의 와전:경찰팀)를 거치지 않은
기자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오랜 관습입니다. 다른
직종에서 전직해온 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쁘게 보면 직종 이기주의일 수 있지만, 발로 뛰면서 취재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1) 취재원과 신뢰를 쌓아라
신뢰는 우선 기사에서 생깁니다. 틀림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만
기사화해야 합니다. 의심가는 사안은 기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런 대원칙이 현실에서는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취재 보도의 경쟁은 치열하고 시간은 촉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말고도 신뢰를 결정할 수 있는 인자는 수없이 많습니다.

취재원으로부터 비보도(off the record)를 전제로 들은 이야기는
보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동료 기자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특히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기자가 A라는 취재원에게, 취재원 B에 불리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고 합시다. A는 당장은 고마와 하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도 그럴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갑)이 A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B에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을까요? 얼마 안가 A는 (갑)을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취재원에게 다른 취재원에 관한 정보를 흘려 주면서
취재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빠른 시간안에 새로운 취재원을
개척하는데는 도움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이런 방식으로는
훌륭한 기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취재원과 오랜 교부을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겸손하라
뉴튼을 잘 아실 것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해서
운동의 3대 법칙, 미적분학, 빛의 성질등 근대 수학, 물리학,
천문학, 광학등 근대 과학의 기초를 닦은 거대한 인물입니다.
대다수 다른 과학자들은 하나를 발견하기도 어려운 업적을
수없이 내놓음으로써 과학사에 길이 남는 인물입니다. 그 뉴톤이
자신의 발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활한 진리의 바다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나는,
해변에서 놀면서 때로는 조개껍질보다 더 매끄러운 자갈을
찾아 헤매고, 때로는 보통 조개껍질보다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는데만 몰두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렇습니다. 기자는 기자가 되기전 강의실에서 배우거나 기자가 되고 난 후 책에서 읽거나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 그리고 취재원과 접촉해
얻은 정보들이 거대한 빙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회인들은 자신의 분야에 관한 한 언론인이나 학자들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조직 논리 때문에
또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 때문에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말할 수 없고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정보의 양이나 질과는 별개로 인식과 전달의 문제도
존재합니다. 기자들이 절대적인 사실(the real fact)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권력형 비리 사건이 있다고 합시다. 실체는 (을)이란 정치인이
(병)이라는 기업인에게 거액을 받고 A라는 특혜를 (병)에게
내준 것이라고 가정합시다. 이 실체를 A라고 가정합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가 (을)과 (병) 사이에 오간 모든 거래를
다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병)이 자신에게 특혜를 준
(을)을 보호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물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파악할 수 있는 사실(편의상 A'라고 합니다) 자체가
사건의 실체 A와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일선 검사는 수사 결과를 검찰 간부에게 보고합니다.
보고받은 검찰 간부가 파악한 '사건'이라는 또하나의 실체(A'')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A''를 검찰은 언론에 공표합니다. 물론 검찰은 발표하기 전에
여러 가지 고려를 할 것입니다. 정치,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서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검찰 간부가 파악한
A''에 덧붙여 A'''라는 새로운 실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까지 사건의 전개 과정을 추적해 보면 네 개의 '실체'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 네 개의 실체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동일체(identity)라면 정말 다행스런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항상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단계를 진정한 실체 즉 진실(truth)라고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대다수 언론과 기자들은 A'''를 '사실'(fact)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조금 취재력 강한 기자들은 그 앞 단계 즉
A, A', A'' 의 어느 한 단계에서 취재하고, 그 결과를
사실(fact)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증이 없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실 보도'의 원칙이 참으로 무색해질 때가 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언론사는 '사실 보도'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도외시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는 '사실'에
입각한 보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자신이 납득하고
자신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어야 합니다.

(3) 품위를 지켜라
기자들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 대개 공직자나 기업인이 되겠습니다만
이들의 눈에 기자는 얻어 먹을 줄이나 알지 베풀 줄은 모르는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입니다.

더 극단적으로는 푼돈을 기대하면서 호의적인 기사를 쓰고
취재원에게 불리한 사안을 기사화하지 않는 대가로
광고나 금전 심지어는 이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공갈배 정도로
비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불식됐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공직자나 기업인은, '기자'를 필요할 때 용돈 몇 푼
주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홍보 요원' 정도로 취급합니다.
일부 기자들의 파렴치하고 무분별한 행위가 이런 인식을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태로는, 이렇게 전락해서는
취재가 불가능합니다.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선비는 곁불을 쬐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새는 감이 있지만 기자들에게 언론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정도의 급여를 지급하는 언론사가 한국에는 몇 되지
않습니다. 언론이 정도를 걷기 위한 토대가 아직은 채 마련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언론 개혁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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