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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ㅣ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 하면 고개부터 저을 사람 많다. 왠지 고리타분하고, 그게 아니라도 머리를 쪼갤 것 같아 말이 나오기도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 그렇게 철학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 오래다.
철학이 정신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몰라서가 아니다. 혐의를 두자면 현대사회의 즉물성에 둘 수도 있지만 굳이 그것만을 특정해서 말하는 건 형평에 어긋나니 현대사회의 특성이 그렇다고 해두자.
철학은 강단에서나 통하는 학문, 또는 강단 밖에서는 지식인입네 하는 양반들이 씨부렁대는 여기 정도로 인식되는 게 안타깝지만 현실이겠다. 그렇다고 철학을 대중 앞에 갖다 놓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성호의 『철학에세이』 같은 서적은 새내기 대학생들의 의식수준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생각하는 이성의 힘을 다시 일깨우기도 했다.
그 시기, 강영계의 『철학이야기』도 인기 품목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철학은 다시 창고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온갖 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박물관에서나 찾을 희귀 유물, 철학을 광장으로 끌어내기까지는 꼬박 20년이 걸렸다.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쓴 황광우. 그의 필명, 정인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세대에게 충격이었다. 그가 써낸 책들은 둔기로 뒤통수를 내려치는 격한 울림을 동반했고, 철학이 실천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비로소 알게 했다. 상아탑에 머물던 철학이 현실세계로 뛰어든 순간, 나는 하루 종일 몸살을 알아야 했다.
세월이 바뀌어도 시대정신은 또렷이 남는 법인가. 그의 책, 『철학 콘서트』가 또 다른 코드를 내장하고 대중 앞에 섰다. 딱딱하기만 했던 철학이 말랑말랑해졌고, 지루하기만 한 철학이 산뜻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자세히 쓰자면 한이 없고, 간단하게 전달하려고 하면 알맹이가 없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 콘서트』는 그 중간에 위치해있다. 중간이란 잘못 서면 이것, 저것도 아니기 쉽다. 중간에 서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일 텐데, 대단한 내공이 아니면 쉽지 않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얻기까지 치열했을 저자의 삶을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도 이 책을 대하면서 얻는 별스런 맛일 수 있겠다.
그는 학생이자 노동자이면서 저술가였다. 여러 사람의 생을 한 몸으로 살면서 녹아든 사상이 오롯이 드러난 이 책은, 그래서, 여타 책들처럼 현란한 문체를 앞세워 독자를 위협하지 않는다. 구어체가 주는 호소력을 잃지 않으면서 명쾌한 논리가 전취한 전달력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 난 그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목도했다. 이러한 균형의 미학은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카를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사상가 10인의 삶과 철학을 대하는 저자의 시선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구 하나 모자라거나 남는 법 없이 사상가들을, 삶을 대표하는 X축과 철학을 표상하는 Y축의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에 고르게 편재해 놓았다. 그래서 10인에 자기 세대를 살았음에도 마치 소통하듯 끊임없이 대화하고 때론 자기 주장을 강도 높게 쏟아 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각각의 사상가들의 몸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만큼 감정이입의 정도가 깊다.
물론 시대를 초월해 큰 울림을 동반하는 사상가들의 드높은 철학을 단 몇 장의 분량에 압축해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 무리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일반인들이 철학을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차원의 시도라고는 해도 철학과 철학하는 행위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역작용을 배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철학에 관한 보편적인 심상, 곧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인상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더 많이 이와 같이 가벼워진 철학서의 필요성은 줄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이 지니는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상아탑에 머무른 학문을 시장으로 끌어내 대다수가 공유하도록 만드는 일에 이 책이 기여한 바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이유로 이후 이와 같은 책들의 출간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가볍지 않으면서 술술 읽히는 책을 찾고 있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