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 - 인문학자 10명이 푼 유쾌한 과학 이야기
김용석.공지영.이진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6월
평점 :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만났다. ‘현실 없는’ 인문학과 ‘사람 없는’ 과학의 맹점을 서로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아니면 창을 든 인문학자가 '황우석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과학자의 아픈 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댔을까?
아니다. 물론 인문학자의 질문은 직접적이었고, 그런 만큼 날카로웠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답변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명쾌했다. 과학적 성취와 연구가 인문학적 사고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과학자에게서 먼저 나왔다.
스테인리스 같이 차가운 이미지의 과학을 따뜻한 시선을 지닌 인문학을 통해 들여다보자는 취지의 기획의도(?)가, 과학자가 준비한 의외의 반격으로 멋쩍어진 「‘반도체 사유‘, 미래 화두 던지다」는 영화적 반전이 주는 의외성만큼이나 신선했다.
동양철학자인 성태용 교수가 반도체공학 분야의 리더 유인경 박사와 만나 이루어진 대담에서 철학자는 과학기술에 철학적 사유를 접목하려한 과학자의 시도에 고무됐다. 그리고 그것을 ’과학기술의 창으로 본 동양철학‘의 가능성을 여는 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질적인 학문 분야에서 각기 일가를 이룬 학자 상호간의 만남과, 그 만남에서 비롯된 상호이해가 각자의 학문을 풍부하게 하고, 상호간에 접점을 찾아가는 성취로 귀결될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을 다루는 과학과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그것들은 마치 불과 기름의 관계처럼 반목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 위에 서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 이 책을 펼치면서 내심 걱정했던 것은, 지금이야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판명 났지만, 애써 마련한 대담이 오히려 서로의 주장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0편의 대담 어느 곳에서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차이는 학문의 고유한 차이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대담자들이 적극 나서서 그 차이를 인정하되 그 격차를 줄여 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더욱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조금 더 일찍 만나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이질적이라서 만나지 못한다면 학문이 본래 지향하는, ‘인류사회에의 공헌’은 요원하지 않을까. 쉽게 생각해도 사람과 사회가 어디 어느 특정 학문 분야 하나의 놀라운 성취 위에 존립하기나 할까, 의문이다.
여러 학문 분야가 인류사회라고 하는 큰 틀의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잘 된 것은 따라 배우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우리 학문사회는 그런 풍토 위에 서질 못했다. 이제라도 이런 대담의 기회가 늘어남으로써 학제 상호간 불필요한 오해와 교류를 막는 일방적인 단정이 불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 기본적인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과 작년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황우석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분들과 인문학의 퇴조를 걱정하는 한편 인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모색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선뜻 권한다. 아울러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사고에 관한 소양을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이 크게 유용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