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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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오래 전 어느 날, 자주 가던 서점에서 무슨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책을 눈으로 밟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 책은 이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고정관념을 타파해 보자는 취지의 내용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그리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또 무슨, 무슨 법칙이라는 제목의 책 출간이 뒤를 이었다. 앞서 말한 책이 고정관념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을까?

고정관념은 다른 생각이 끼어 들 틈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그래서 창발성이 요구되는 사안에 고정관념이 개입하고 나면 반짝이는 아이디어 같이 그 사안에 결정적인 단초가 될만한 것들은 여지없이 설자리를 잃고 만다. 처음엔 고정관념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틀에 박힌 것으로 변질되었을 테고 어느덧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여간해선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에 그것이 발목을 잡을 때라야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땐 이미 늦다. 다른 생각의 여지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괴물의 모습을 어느 누가 제대로 보려 할까.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변화된 고객의 니즈를 따라 ‘기업의 전통적인 구조와 마인드’(일종의 고정관념)를 바꾸지 못해 주저앉고 마는 것이리라.

그만큼 고정관념은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있다. 지속적으로 그 녀석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으면 여간해선 뽑히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고정관념이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그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이 자리잡은 모양을 알기 쉽게 풀어준 책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유형의 책이 많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고정관념의 타파를 외치며 출간된 책은 이 책이 그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적으로 내 기억에 의존한 판단이니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진 말기를.

이 책의 출간 소식에 반색했던 것은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이 고정관념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데 있다. 진리 외에는 확고부동한 것이 없다는 기본적인 인식과 달리 과학과 역사, 기타 영역에서 구축된 지식이 마치 진리인양 포장된 것들이 좀 많은가. 그런 것일수록 빠르게 고정관념화한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발견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물리치는 데는 또 많은 시일을 잡아먹어야 한다.

문학도 자유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동화 속 이야기가 지배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통치에 순응하는 인간군을 양산해내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양상이고 보면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일깨우는 동화라는 기존의 관념은 또 다른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여섯 편의 동화를 패러디해 전혀 다른 형식의 동화로 탈바꿈시켜 놓고 있다. 그러는 새 본래의 동화가 숨겨놓았던 고정관념이 탈을 벗고 전면에 나타난다. 보이는 적은 다루기 쉬운 법이다. 고정관념의 실체가 여지없이 허물어 내린다. 

「흑설공주」는 동화 속에 숨긴 미의 척도를 본래의 미의식으로 환원한다. 일종의 이데올로기화한 현대의 미는 흰 피부에 오똑한 콧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온통 검은 피부를 자랑한다. 백설공주의 딸로 태어난 흑설공주 이야기라는 설정이 이채롭다. 검다는 이유로 배척 당한 흑설공주가 미의 기준을 바꿔놓으면서 어떤 피부색을 가졌던 본래의 미는 내면 속에 각자 모두 갖고 있다는 결말은 끝을 맺는다. 당연한 결말임에도 신선하다. 고정관념을 벗어 던진 이야기는 머리 속을 맑게 한다.

계모의 딸은 언제나 계모를 닮아 못된 짓만 일삼을까? 그런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돌려세우고 있는 「팥쥐랑 콩쥐랑」은 협력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전통사회가 강요한 남성위주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 팥쥐와 콩쥐가 더 이상 아버지와 사또로 대표되는 남성에게 기대 사는 의존적 존재가 아님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유리 구두를 벗어버린 신데렐라」, 「오누이 힘 합하기」, 「잘했어! 인어공주」, 「나무꾼과 선녀」 등의 작품들도 한결같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 드리워진 얄팍한 고정관념의 실체를 가차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명작이라고 읽기를 권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가둬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에 주먹만한 먹먹함이 인다. 그래서 반대급부적으로 이런 책의 출간이 봇물일 듯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아이들의 생각이 균형을 갖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가 두말할 나위 없이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이 책이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고 해서 아이들만 읽으란 법 없다. 오히려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갇혀 문제의식 없이 현실 생활에 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땅의 부모들이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더 이상 고정관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바로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먼저 부모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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