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베스 켑하트 지음, 윌리엄 설릿 사진, 공경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아침 고요 수목원'을 생각했다. 아이들과 간 지난 8월의 정원은 만개한 꽃들로 화사했다. 개울가 돌 틈엔 야생화가 삐쭉 짓궂은 고개를 내밀었고, 비탈 새론 연신 싱그런 바람이 넘나들었다.

넉넉히 제 품을 양보한 그루터기는 옛이야기였고, 귓등에 내려앉은 풀벌레들의 아련한 화음은 그대로 시였다.

그 곳에선 시집을 꺼내 들어야 제격이다. 해질 녘까지 토르륵 책장을 넘겨도 미안할 일 전혀 없는 곳. 난 ‘챈티클리어’를 그렇게 상상했다.

분주한 일상을 돌연 내려놓기란 생각같이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때때로 낯설음을 동경하고 일탈을 감행하는 것이리라. 낯선 곳에서 맞는 때 이른 아침이, 그리고 스산한 저녁 어스름이 자기성찰의 기회를 얼마나 많이 제공해 왔던가. 길 떠나 본 사람이라면 제대로 알 터. 지금도 난 저자가 찾은 '챈티클리어'가 그와 같았으리라 믿는다.

챈티클리어는 펜실베니아 남동 지역에 위치한 정원으로 1913년 저자의 부친이 조성했다. 이 책, 『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은 그 정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을 통해 내면적 성찰의 세계를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는 저자 자신의 사적 일기이자 자기 고백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연과 사람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들풀과 벌레와 자갈이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챈티클리어에선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저자와 같은 마흔 한 살의 나이든 생기발랄한 20대 초반의 나이든 비록 깊이와 너비가 다를망정 일상에서 잠시 물러앉아 자기 삶을 조용히 관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챈티클리어는 더없이 소중한 장소다. 그런 의미에서 챈티클리어는 성찰을 두루 표현하는 일반명사와 다르지 않다.

소공원 벤치에 앉아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내밀한 언어를 애지중지 다루는 연금술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 속에 있었다. 드러나진 않아도 밴드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베이스의 기타 음처럼 잔잔한 공명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글이 자주 읽히기를 바란다. 번역자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직역과 의역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여러 곳에서 본래의 글 맛이 떨어져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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