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신 치바’의 사신이 한자어 사신(死神)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이해하기 쉽게 그냥 ‘저승사자 치바‘라고 번역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괜한 수작을 걸었다. 그리곤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번역가의 입장에 서서, ‘그랬다면 전설의 고향 냄새가 났겠지’, 하고 기꺼이 두둔하기를 마지않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얼토당토않은 해프닝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굳이 그런 해프닝을 들려주는 건, 처음의 나처럼 사신이라고 발음하는 즉시 떠오르는 심상을 근거로 이 소설을 전형적인 귀신 이야기일 것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를 벗어 던질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뜻에서다.

난 이 책을 쉽게 펴들지 못했다. 선입견은 상상외로 거셌다. 당연히 재미없을 것이고, 또 당연히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좀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한 꼭지를 읽고 난 뒤였다. 그렇게 똬리 튼 생각이 일거에 흩어졌다. 지면에 가득 드리운 안개가 때마침 내리쏘는 햇살에 온통 사그라지듯. 

사신 치바는,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곧 나를 긍정하기도 하고 때로 부정하기도 하는 ‘나’라고 생각했다. 속상한 일을 당할 때 또 다른 내가 나서서 나를 위로하지 않던가. 그까짓 것 잊어버리라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던 나. 그런 나를 사신 치바를 통해 보았던 것이다.

죽음이 임박한 여인의 상태를 점검하러 나온 치바가,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여인에게  기꺼이 ‘죽음 보류’라는 선물을 준 것을 보라. 삶의 의지는 운명마저 돌려세운다는 고전적인 해석은 적절치 않다. 차가운 사신에게서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사신이 표창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인 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이유로 오늘 사신 치바를 ‘아(我) 치바’로 부른다고 형용모순은 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