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천방지축 뛰놀기 바빴던 중학생 시절, 그래도 방학이라고 책 한 권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펼쳐든 책, 표지를 포함해 서너 장이 찢겨나간 터라 제목을 확인할 새도 없이 읽는 재미에 폭 빠졌었다. 세로줄 쓰기와 익숙지 않은 활자는 누가 봐도 단박에 윗세대가 구입한 책이란 걸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읽은 책이려니 생각하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것이 총 두 권 중 한 권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알고 얼마나 아쉬웠던지...... 아무튼 일본작가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이뤄졌다.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맞게 된 또 다른 일본작가. 감흥이 남달랐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렇다고 미동조차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게다. 80년대 전후 소설의 통속성에 넌덜머리가 난 후 소설과는 일정부분 거리를 두어왔으니 어느 작가의 책이라고 달랐으랴.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무척 낯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난감해 했던 그 날의 기억처럼.

창에 후다닥 부딪는 여름장마와 달리 옷깃이 날리는 걸 보고 존재감을 비로소 알게 되는 봄바람처럼 그저 잔잔하기만 한 이 소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읽히지 않으면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무료로 얻었으니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의무감이 앞선 탓이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벌써 책의 반을 훌쩍 넘었다, 그런 종류의 이물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이 소설 안엔 정확히 집어낼 순 없어도 무언가 따뜻한 구석이 있다는 그 느낌 때문이었다. 어느 틈에 잔잔한 스토리 구도 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던 걸까?

『중력 삐에로』는 전혀 다른 방식의 마력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우선 그걸 두고, 일본소설의 소설적 특성이라고 해두자. 

소설은 하루와 그의 형, 이즈미가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형과 달리 하루는 예술 영역에 조예가 깊을 정도로 극히 사색적이다. 어느 날 의문의 연쇄방화사건이 일어난다. 하루가 이즈미가 근무하는 회사에 방화가 있을 것을 예견한 후 형은 하루가 방화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하루는 벽에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를 이용해 낙서하는 그래피티 아트를 지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피티 아트가 그려지면 연이어 방화사건이 일어나는 일종의 규칙성(룰)을 발견한 하루는 그래피티 아트에 쓰인 영문자가 방화사건의 단서가 될지 모른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것이 이즈미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형과 하루는 방화범을 잡기로 하고 그래피티 아트가 그려진 벽 뒤편으로 180도 범위 내의 빌딩 중 두 빌딩을 주목하고 각각 잠복에 나선다. 하루가 잠복한 빌딩에서 불이 일어났다. 빌딩 입구에 도착해 모퉁이를 돌아드는 순간 등을 돌리고 재빨리 사라지는 고다 준코를 발견하는데...... 그럼, 방화범은 고다 준코?......  다음날 이즈미가 고객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들른 고급 아파트에 고다 준코가 나타나고. 이제 사건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들 조짐을 보인다. 

출판사에 의해 현재 일본 문단에서 가장 각광받는 지성파 신예로 소개된 저자는 거대한 서스펜스나 반전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소설 전체를 호수 중앙에 갖다놓고 파문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속도감을 잃은 소설은 때론 정지해 있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유전자 염기 배열을 심심지 않게 배치하고, 두 문자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적 구성을 보이는 등의 특별한(?) 장치가 아니었다면 김빠진 맥주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함유된 오염물질을 흡입하기 싫다고 산소를 거부할 수 없듯이 어떠한 이유로도 벗어버릴 수 없는 엄연한 ‘일상’(주인공들의 입장에서야 어디 닥친 사건들이 일상이었으랴 마는)을 소설 전체에 깔고, ‘그러니 어디 한 번 읽는 걸 포기해 보시지’ 하고 위협하기로 작심한 듯 하다.

그런 정도의 위협이야 처음엔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도 책을 읽는 사이사이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어서 그것이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쯤 눈치챌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한 건 전적으로 내 불찰이다. 그닥 감동스러울 것도 없고, 추리소설다운 강렬한 반전이라든지 단서를 좇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라든지 묘미 같은 것들을 전혀 내장하지 않은 이런 소설의 미덕이 무엇이라고 난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을 밀쳐놓지 못했다. 치명적이지 않은 독, 하지만 장기 투약에 따른 사망마저 피할 순 없게 만드는 그 독을 기꺼이 마신 격이었다. 다 읽은 지금, ‘이렇게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긍정(이와 유사한 구도의 우리 소설에 비하면 정말 밋밋하다)이 일고 보니 그야말로 어이없다. 정정해 말해두건대, 이 소설은 치명적인 독이다. 다시 또 저자의 소설에 접근할지도 모르겠다고 선언하듯 무장해제를 해버린 의식을 추스를 자신이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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