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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2000년대 초 조앤 롤링이라는 작가의 출현은 환타지 소설의 부흥을 알리는 전조였다. 그의 작품 해리포터 시리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례적으로 작품이 나오기도 전에 출판 계약이 이뤄지는 진기한 풍경까지 연출됐다. 환타지 소설은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보기 좋게 꺾어놓기도 했다. 그의 책을 앞다퉈 구입하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아류작의 출간이 줄을 이으면서 환타지 소설은 2000년대의 대표적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환타지 소설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요했다. 복지정책의 축소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기조로 한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바야흐로 급물살을 탈 준비를 하고 있던 때가 바로 그 2000년을 고갯마루로 둔 1998, 9년경이었다. 세계는 모호하게 번역된 세계화, 곧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갖췄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기도 전에 그 안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일종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양극화 현상은 그 부산물이었다. 양극화 현상은 의식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몽환의 추구가 현실 도피 수단으로 적극 차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환타지 소설은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부응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다소 둔탁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출판사측에 의해 고전 환타지 소설로 명명된 『옥루몽』 또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옥루몽』이 출현할 당시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의 질서가 유교적 통제를 바탕으로 공고하게 그 틀을 갖추고 있었으나 정파적 이해에 따른 당쟁의 격화로 민생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던 상태였다. 정치, 경제적으로 미래를 향한 동력을 상실한 사회는 반대급부적으로 현실 부정의 양상을 보이는 한편 그 수단으로 도피처를 찾기 마련이다. 고전판 환타지 소설이 태동할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때 『옥루몽』이 출현했으니 비록 한문으로 되어 있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만만치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등장인물에 대한 탄탄한 묘사와 빠른 극 전개가 읽는 재미를 더했을 것이다. 주 소비층이 누구였는지 기록이 없어 짐작만 할 뿐이지만 입소문에 힘입어 구전의 형태로 많이 읽히지 않았을까 싶다.
『옥루몽』구운몽과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갖춘 고전 소설이다. 일부다처제를 암묵적으로 옹호하는 등 작품 안에 사회적 일탈을 내장함으로써 답답한 현실에 마스터베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인물의 비현실적인 행동을 미화함으로써 그 인물과 심정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는 등 현실도피적 환타지 소설이 갖춰야 할 미덕을 두루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전반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을 불교적 습속이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점도 이에 한몫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역할을 주도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높였으리라고 본다.
관음보살에게 발원하여 태어난 양창곡은 본래 선계의 사람, 문창성군이다. 싯구가 문제가 되어 인간세계로 내려온 문창성군은 16세가 되던 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길에 오른다. 도중 강남홍을 만난다. 황제의 뜻에 반해 윤소저와 혼인한 문창성군은 유폐되고 만다. 곧이어 그곳에서 벽성선을 만난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문창성군은 황제의 주선으로 황소저와 혼인한다. 대원수가 되어 남방정벌에 나선 문창성군, 나탁과 맞서 싸우는데, 풀려난 나탁은 무릎 꿀 기색을 보이지 않고......(총 5권 중 1권의 줄거리)
이 책이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매끄러운 번역에 있다. 자칫 지루할 수 있을 한문투나 번역체 문장이 종종 드러내는 어순파괴 등 독해를 어렵게 만드는 제반 요소가 전혀 없다.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이라면 두 번째 미덕은 문장 구조를 짧게 가져감으로써 호흡이 길지 않아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전소설의 특성상 현대적으로 변용이 가능하지 않은 특정 한문 용어를 각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읽는 도중에 시선을 이동하는데서 오는 불편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각주를 책의 말미에 배치하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을 바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을 필두로 고전소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를 바라며 후속 작품들이 번역, 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