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으로부터 자유 - 아주 사소하고 사적인, 김수경 카툰우화집
김수경 지음 / 강같은평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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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처럼 일거에 세상을 깨우는 빛 : 〈비판으로부터 자유〉

 

 

세상을 살면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만큼 가슴앓이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없을 듯싶다.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남을 앞서려거나, 심한 경우 남을 짓밟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타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 설명은 변명으로, 항변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인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런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 〈비판으로부터 자유〉를 쓰고 그린 김수경은 자신 또한 그러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이 이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다급히 알고 싶어졌다"고 그때의 심경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당시 저자가 맞닥뜨린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을까? 소제목을 통해 잠시 들여다보자. "내 인생에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다." "꼬리표를 달고 살고 있었다." 소제목을 보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앞뒤사면이 꼼짝없이 막힌 상황이다. 이 경우 그저 막막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실할 것이다. “그래, 어떡하면 좋으니?”하는 걱정 외에 덧붙일 말이 더 있을까 싶다. 그만큼 당사자가 직면한 고통을 덜어줄 묘안이 없다는 얘기다. 나는 아닌데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어떻게 돌려 세운단 말인가?

 

 

진심은 통한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험담을 늘어놓는 상대방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니라고 한들 받아들여질 가능성마저 희박한 상황이라는 것쯤 누구나 유사한 상황을 적거나 많이 겪었을 터라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름 처방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홍글씨를 박은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든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무시하고 만다든지,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낸다든지 하는 정도가 대부분인 것도 이 상황의 특징이다. 그와 같은 처방은 틀어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유효한 처방이라고 할 수 없다.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면 상대방의 비판에 더욱 힘을 싣게 할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던 귓전으로 흘리면 상대방은 당신이 떠도는 말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건 자신을 더욱 괴롭게 할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야 직장을 떠나든지 요즘 세간을 들끓게 한 중학생자살사건처럼 생을 마감하는 선택이 있기야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찬찬히 경우의 수를 살펴보면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저자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역시 소제목이 키워드다. “따스한 세상으로 초대받았다.” “그들에게 가 보라고 하셨다.” “내 속마음을 궁금해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자 또한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군거리는 그들과 그들이 손가락질 할 만한 태도나 말을 하지 않은 나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부풀려지는 갈등의 원인을 풀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지푸라기처럼 잡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악화될 뿐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저자가 기억해 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분이 누구를 해치거나, 험담을 늘어놓거나 빈정 상할 말을 퍼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분과 전혀 섞이지 않은, 경우에 따라 일면식도 없었을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그분을 조롱했다. 심지어 죄를 찾을 수 없었음에도 그분을 천형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마침내 그가 못 박히자 그들은 “무슨 왕이 제 목숨하나 구하지 못하느냐”고 침을 뱉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필시 저자 또한 군중심리에 이끌려 그와 같은 사람들의 부류에 속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상황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역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셨음에도 그들을 선하게 대했다. 아버지 하나님이 그들을 너무도 사랑하심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팔아넘길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 순간 저자는 상황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자신이 그들을 향해 저자와 원망의 화살을 수없이 날려 보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받은 충격을 저자가 카툰으로 옮겨 놓았다. 그들의 성을 두 동강 내고 그들 각자의 삼장에 구멍을 뚫은 것도 모자라 그들 모두를 한손으로 싸잡아 으깰 정도의 사악함을 지닌 둘도 없이 악했던 자신의 모습을 매섭게 그렸다. 더불어 그들이 자신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여 주었듯이 자신 또한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줌으로써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음을 또한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무수한 꼬리표들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것들을 전부 없앴음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선언하셨음에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에게 꼬리표를 달아주는 데 열심이었을 자신의 모습을 본 데서 결정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앞에 또렷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제야 저자는 자신을 손가락질 한 이들을 찾을 용기를 얻었다.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박힌 십자가에 자신을 올려놓을 때 시작된다. 그 후에야 부활이 있다. 누구나 부활 이후의 영광을 취하려 하지만 그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라는 과정을 거쳐야 온다. 과정 없이 결과만 취하려는 것은 반쪽자리 신앙이자 불안한 기대일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이은 부활의 과정을 밟았음에야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들의 꼬리표를 전부 지고 십자가에 올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꼬리표, 곧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체휼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고 심각하게 부르짖으셨던 것이리라.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십니까! 그 고통은 바로 아버지와 분리될 만큼 심각한 고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후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부합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볼 때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갈파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더 나간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경우는 조금씩 달라도 비판하는 순간 비판 대상자를 닮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어느 누구도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 없잖다. 문제는 당신이 누구를 비판하는 순간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그 문을 통해 당신에게 들어온다. 그리곤 당신이 비판에 노출되도록 상황을 조성한다. 당연히 당신은 당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당신을 비판하는 이들이 당신을 잘못 알고 있다고 항변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당신을 흠잡을 것이다. 당신의 다음 선택은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다. 불면의 밤이 찾아온다. 당신의 고립은 심화된다. 이제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당신만 보일 뿐이다. 어둠 속에 갇힌 당신의 모습만. 그 상황은 사탄이 바라는 바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립이야말로 사탄이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략이다.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속이는 것은 사탄의 주특기다.

 

 

저자가 책의 많은 분량을 비판을 하거나 비판을 받는 것의 결과로 찾아온 암흑과도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 데 할애한 이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함에 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얼굴 어디에 더러운 것이 묻었는지 알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과거 또는 현재에 직면했거나 직면한 고립을 찬찬히 돌아보도록 안내하려는 의도 또한 있을 것이다. 세세하게 묘사된 1장부터 3장까지를 읽는 동안 괴로웠던 지난날이 떠오를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 당신의 현재가 비춰져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책장을 덮지 마시기를.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빨리 오는 법이라지 않은가! 새벽빛처럼 일거에 세상을 깨우는 빛이 당신을 찾아온다. 당신의 찢어진 마음에 곧 당도할 테니 물러서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사랑하신다. 당신이 더 이상 고립감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고대하며 해답을 들고 당신을 찾아오신다. 이 책이 그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누구든 이 책은 꼭 일을 일이다. 읽기에 부담 없는 카툰 우화집이라는 점도 이 책의 미덕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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