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김형준 지음 / 강같은평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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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師表)가 필요한 시대, 9명의 선한 목사를 만나다.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은 이 시대를 말씀이 없어 기갈인 시대라고 부릅니다. 매 주일마다 수많은 말이 강대상을 통해 쏟아져 나오지만 그 말들이 영향을 끼치는 말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능력을 지니려면 말을 전하는 사람이 그 말에서 받은 실제적인 영향력을 체화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덕담과 훌륭한 미담이라도 그것들을 실제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속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뿐더러 본래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글은 삶의 총량에 비례한다”는 말이 적절한 대구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빼어난 글도 삶이 밑바탕에 흐르지 않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대면관계에서 긴밀하게 이뤄지는 말에 있어서야 말의 밑바탕을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능력은 말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 어떤 위험성을 지녔는지 경고하는 성경의 경구입니다. 독백이 아닌 한 말은 대부분 상대방에서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치의 혀가 지닌 말의 힘이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성경을 다루는 목사의 말은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니고 있어서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부분을 망각하는 일이 잦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교회에서 원로목사의 은퇴를 둘러싸고 장로와 목사의 가족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 급기야 당해 목사가 사실상 은퇴를 접는 양상으로 번진 일이나 기독교정당을 만들려는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함량미달의 발언이 나오는 등의 불협화음은 말과 삶의 불일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소망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대거 정부 소속 부처와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소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로 남아 있습니다.

 

 

세 명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그를 따라 수많은 기독인들이 입각했음에도 사회에 사랑과 양선 등의 기독교적 가치를 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없거나 성하지 않으면 본디 씨앗과 그 씨앗에서 비롯된 나무를 제대로 된 나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첫 모양새가 번듯하고 무언가 대단한 어떤 것을 낼 것처럼 보여도 실제 기대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는 과감하게 그 나무를 베어버립니다. 혹여 그 나무를 그대로 둘 경우 다른 나무들에게 갈 양분마저 빼앗아갈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나무를 뽑은 자리에 튼실한 나무를 심을 경우 다음 해에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목사는 엘리트와 지도자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기독교가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지켜보고 있기도 합니다. 목사 관계 사건사고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달리 보면 그만큼 사회에 목사에 대한 기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 삶과 말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은 필연코 행동으로 검증되는 때가 오는 법입니다. 그 시기가 며칠 후에 올 수도 있고 앞서 목사의 경우처럼 생의 마감을 십 수 년 앞둔 시점에서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 시점에서 그가 한 행동이 그의 과거를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을 자임하려면 교회를 진두지휘하며 오롯이 언론에 노출된 목사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장로도 있고 교인도 있는데 왜 나부터냐”고 항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직임 자체가 그토록 엄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뉴스타임 정치경제부 부장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형준이 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선한 목사의 길을 가는 참 목회자의 상을 단편으로 묶어 바른 지도자가 없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시대에 작지만 힘 있는 울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책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로 국립대학 총장 1호가 된 문선재 목사와 1년 1억을 나누는 작지만 큰 교회 옥수중앙교회를 섬기는 호용한 목사를 비롯해 총 9명의 목사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공통된 변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사랑”입니다. 이것들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와 사회 안전망 부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면서도 유감스럽지만 그 실체가 사람들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향력을 갖춘 크리스천들이 부재하거나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비록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의인 열 명이 없어 망한 소돔과 고모라성의 예를 반면교사를 삼을 때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가 될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하나 더 소개하면 하나같이 감사를 하나님께 돌린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삶은 여느 사람들처럼 곤궁하고 때론 원치 않는 역경에 처해 부르르 몸을 떠는 등의 복잡다단한 삶이었지만 그들은 끝끝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누군 세상의 기준으로 봐도 훌륭한 업적을 이룬 반면 누군 아직 갈 길이 더 남아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순교로 자신을 드리기까지 헌신하였습니다. 신앙 외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을 믿으면 삶에 굴곡이 없고, 어려움은 나타났다가도 곡 사라지는 등의 환상을 갖기 쉽습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영적인 면과 신앙적인 면, 물질적인 면 모두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게 문을 열어준다든지, 죄와는 별개로 내가 희망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희생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인 신앙이 믿음의 이름으로 행해진 곳에서는 감사가 일어납니다. 비록 그 과정이 못내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도 믿음으로 가는 이유 또한 그 과정에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책에 언급된 9명의 목사들은 한결같이 동행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감사로 송축하고 있습니다. 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시대에 주목받는 목사가 아니어도 하나님께는 첫손가락에 뽑힐 목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땅 곳곳엔 그런 목사들이 적지 않다는 희망 또한 발견합니다. 그래서 제게도 감사가 속 깊이 퍼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9명의 목사가 보인 삶과 증거에서 독자 모두 같은 크기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으로 말하지 않는 한 어떤 말도 사람을 웃거나 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사회적 영향력 또한 삶에서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들 9명의 목사가 우리 삶에 타산지석과 사표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의인 9명이 거둘 또 다른 열매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남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작지만 힘 있는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충격하는 이와 같은 글들이 확대 재생산되기를 거듭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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