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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 줘 - 시테솔레이의 기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정화영 지음 / 강같은평화 / 2010년 2월
평점 :
중남미 열대지역에 면해 풍부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카리브해의 옥빛 해안을 끼고 무한히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사철 과일이 영그는 곳. 대자연의 향연이 낮밤을 달리하여 연신 춤을 추는 동안 인간은 권태로운 오침에서 막 깨어나 나른한 일상을 한방에 날릴 별난 어떤 것을 기대하며 뽀얀 먼지 쌓인 거리를 나선다. 저녁이면 붉게 타는 노을이 비낀 해변가 해먹에 몸을 뉘어 감상에 복받친 눈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는 멋이 과일 보다 잘 익는 그곳을 우린 열대를 보며 멸망한다. 가보지 않은 곳에 다다를 꿈, 오지를 향한 끝 모를 동경이 결합돼 또 다른 상상이 별처럼 쏟아진다. 과연 그런 걸까? 미지는 늘 그렇듯 풍요롭고 항상 평화로울까?
적어도 아이티는 아니다. 웅덩이 물을 마셔야 하는 아이들은 기생충에 감염돼 배가 불룩하고 말린 진흙을 쿠키 대용으로 먹어 대부분 병에 취약하다. 아이들이 이러니 어른들의 삶이라고 나을 게 없다. 회색 시멘트로 두른 집 지붕은 양철로 둘러 정오의 뜨거운 태양열을 막아주지 못했고 그마나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햇빛마저 막을 길 없다. 집안이라고 해봐야 잠잘 곳이라곤 달랑 낡은 침대 하나, 가족들은 밤을 나눠 침대에서 잔다. 일 나가는 남편과 첫째 아이가 밤 시간을 둘러 쪼개 자는 데 익숙하다. 아내와 아이 둘은 낮잠으로 대신한다. 형편이 이런데 먹을 것이라고 넉넉할 리 없다.
“아이티는 전체 인구 900만명의 7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서반구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유엔지원군이 파견돼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빈발하며 아이티인들의 고통을 더했다. 2004년 홍수로 3000명이 사망했고,4개의 허리케인이 휩쓴 2008년엔 1000여명 사망에 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때의 충격에서 채 회복되기도 전에 200년 만의 대지진까지 닥치면서 아이티인들은 눈물을 흘릴 사치마저 빼앗긴 참혹한 고난사를 덧붙이게 됐다.” 지난 달 29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글(〈아! 아이티… 카리브해 연안 흑인 노예 후예들의 서글픈 역사〉)의 일부다.
지난 대지진 때 구호물자를 먼저 가져가려고 다투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언뜻 이해는 되면서도 혀를 찼던 일이 새삼 가슴을 저민다. 지진이 났다는 단순한 지식만으로 아이티를 바라본 나는 여느 사건사고를 대하듯이 아이티를 다시 기억하지 못했다.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테지만 아이티의 일은 내 영역을 침해할 소지가 전혀 없던 탓이다. 내가 편하면 남의 곤란을 돌아보지 못한다. 올챙이 적 시절을 잊지 않는 건 어렵다. 작가처럼 영적 돌파구를 욕구하지 않았다면 아이티는 여전히 먼 나라의 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여기로 그곳 소식에 마음 아파하는 선에서 책을 덮고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관행에 터 잡지 않았다. 저자가 경험한 아이티라고 해야 2 내지 3개 도시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아이티 전체의 현실을 대변하고도 남았다. 그와 같은 일은 저자가 진심으로 그곳을 읽고 따뜻한 팔로 보듬고 강한 발로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명확한 목적의식 없이 도착한 곳이었지만 저자는 그곳에서 선교사로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백삼숙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으로 불러내 그 땅의 현실을 전하도록 하셨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는 아이티를 다감하게 썼다. 아이티의 고단한 현실과 비루한 일상을 기록하되 가슴은 냉철한 눈과 달리 그 땅을 구원하고 회복하실 하나님을 붙드는 소망으로 뜨거웠다. 그는 그 백미를 두 개의 삽화로 적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목사님), 전도사님 ~ 생일 축하합니다.” 카드와 선물을 들고 목사님과 전도사님께 전달을 하는데 왜 청승맞게 눈물이 고이는 걸까. 목사님은 왜 눈가를 훔치고 전도사님은 시선을 피하실까. 우리는 이렇게 작은 일에 감동하고 행복해하며 감격해하는가. “아, 모두에게 음......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엄마는 박수를 치는 자식들에게 ‘고맙다’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인사를 전한다. 그 말이 얼마나 생명력 있는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가족이 된 우리가 풍성한 식탁보다 더 풍요로운 가슴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말, ‘사랑한다는 말’뿐이었다.》(〈사랑합니다. 사랑해요〉, p91)
저자는 한 달여의 일정으로 아이티에 온 터였다. 귀국할 날을 앞두고 그가 자청해서 이틀 간격으로 있는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생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저자는 하루 종일 전을 부쳤고 자식들(물론 고아다.)은 노래와 율동을 연습했다. 그날 저녁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밤새 그들은 잠들지 못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 그것은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 땅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어어엉.... 어... 엄마,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어어엉!” 이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닌가. 괜히 나도 울고 전도사님도 운다. 겨우 한나절, 아침에서 늦은 오후까지 집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탕자가 돌아온 듯 엄마는 아들을 껴안는다. .....(중략).... 그런데 엔나가 뭔가를 꺼내놓는다. 밥이었다. “그건 또 뭐야?” “이거, 다빗 밥이에요. 점심에 다빗 밥을 챙겨 놨어요.” 다빗이 언젠가 돌아오면 먹이겠다고 엔나가 밥을 챙겨놓은 모양이다. 쭈뼛거리며 비닐봉지를 여는데 밥이랑 반찬이 뒤섰인 게 볼품없지만 모두의 표정은 행복해진다. 다빗과 아이들 모두 깔깔 웃는다. 나와 전도사님도 한번 눈을 마부치고 하하! 웃었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집 나간 동생을 위해 아랫목에 공깃밥을 넣어 놓는 사람이고, 오빠가 혼나는 것이 마음 아파 먹은 것이 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용서되는 엄마, 이것이 진짜 가족이 아닐까.“》(〈너희가 가족인 이유〉, p137-138)
사랑의 집을 방문한 땁땁이(대중교통버스를 그렇게 불렀다.) 운전사에게 돈을 구걸한 다빗은 받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사먹었단다. 운전사의 경찰 친구를 불러 다빗을 혼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목사는 아침 금식을 선언했다. 그길로 아이들은 거리로 나가 흙을 주워 먹었다. 아차, 싶어 목사님은 다빗을 하루 동안 땁땁이 운전사의 집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엄마 말 안 듣고 집 나가면 얼마나 힘든지 알기를 바랐던 엄마의 사랑의 매였다. 성큼 옷가지를 챙겨 나서는 다빗. 하지만 한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집에 혼자 남겨진 다빗은 밥도 먹지 않고 울고 있더란 것. 서둘러 다빗을 데려왔고 이어 위 상황이 벌어졌다. 가족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고 그 사랑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체험해가는 건강한 아이들을 보며 저자와 목사님, 그리고 전도사님이 얼마나 감격했을지 그 느낌이 깊이 전해온다.
내동댕이친 현실은 전혀 녹록치 않고 끝 모를 절망이 문 앞에 엎드려 있지만 결코 그 현실과 절망에 잠식당하지 않은 일꾼들이 추수할 날을 고대하며 씨 뿌리는 그곳을 하나님이 반드시 고치실 것이다. 이 책,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줘〉는 그런 기대와 믿음의 실상이다.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듯 손에 잡힐 듯 써내려간 저자의 저민 가슴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목구멍이 먹먹해질 정도로 감동을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책이 두루 읽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