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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마케팅 하라 - 어느 스페셜리스트의 내밀한 고백
맹명관 지음 / 강같은평화 / 2009년 11월
평점 :
사랑, 행복, 나눔, 교제 등등 세상엔 듣고 말하기에 좋은 말들이 참 많습니다. 살기가 아무리 퍽퍽해도 그런 말들과 친구를 맺는 한 좌절은 없습니다. 그런 말들은 의식적으로라도 자주 입에 오르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말이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이 행동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요즘 다들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들 합니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 한파가 겨울이 오기 전부터 몰아닥친 터라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가계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경제지표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데 실질경제성장은 가시적 성과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이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경제나 정치나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 상태를 ‘희망의 부재’로 투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기 목표와 장기목표가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살 걱정이 더욱 태산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기에 ‘희망을 이야기 하는’ 데서 더 나아가 ‘희망을 마케팅하라’고 등 떠미는 이가 있습니다. 현실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절망적이라고 하기도 하고 희망을 언급해도 제각각 그 희망의 크기가 다를 것입니다. 저자의 희망의 근거는 감사에 있습니다. 현실 이면에 서서 한결같이 우리를 보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줄곧 고백해온 저자의 목소리는 절망과 희망을 꺼내기 전에 먼저 보아야할 것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희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그의 또 다른 고백입니다. 희망이 불완전한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여전히 우리의 삶은 불확실하고 미래는 더욱 불투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이 본래 완전하신 이의 것이었는데 그가 그것을 특별히 아끼는 자녀에게 준 선물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이 경우 희망은 반드시 이뤄질 일을 표창하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응시하는 곳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주는 것입니다. 선물은 답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정의 표현이자 선물을 받는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 가득한 나눔입니다. 선물은 상대방이 풀기 전에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선물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선물의 용도대로 사용하는 것이 두 번째 순서입니다.
선물 안에 희망이 들었음을 안다 해도 그 희망을 내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희망은 절망을 몰아내는 촛불입니다. 그 촛불을 드는 데서 희망은 시작합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둔다고 했습니다. 높이 들수록 멀리 비춥니다. 저자가 4장과 5장에서 함병우와 임준오를 스케치한 이유를 전 희망을 등경 위에 두고 멀리 비추려는 의지로 읽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일터를 가꿔가는 이들의 삶과 철학을 8미리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쫓는 저자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함병우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감각이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행복을 찍고, 가능성이라는 보물을 렌즈 안에 담아내 희망을 연방 전파하는 함병우 특유의 긍정의 힘은 분명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임준오는 비즈니스계의 내비게이션이자 거침없이 돌진하는 3.5톤의 무소처럼 보인다.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인생에서 희망을 낚시한다.”
저자가 스케치한 두 인물의 특징은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절하고 블루오션을 찾아 나선 적극성입니다. 어렵다고 또는 현재 잘 나가고 있다고 주저앉거나 버티지 않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를 품고 세파에 도전한 그들이기에 저자에게 아름답게 추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야기에 귀를 세운 독자들을 충격하며 또한 추동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전염성이 강한 특성을 갖습니다. 한사람의 희망이 그 주변을 파고들면 걷잡을 수 없는 확장세를 보입니다. 과거 어느 때고 되돌아보면 희망을 갖자는 말 한마디에 닥친 어려움이 얼마나 하찮게 보였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떠난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경우에 따라 아브라함에 닥친 현실은 룻에 대한 배신감과 이뤄놓은 것을 전부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점철되었을지 모를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너 있는 곳에서”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있는 곳’이야말로 희망을 꿈꾸는 단초입니다. 지금 여기서 꿈꾸지 않는 것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응시하는 한 어느 누구도 잘못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약속의 말씀처럼 지금 보다 훨씬 나은 보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찾으려 하지 마시고 당신에게 있는 ‘희망’을 마케팅하십시오. 희망이 있는 한 안주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한 번 더 언급하자면 희망은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다’(요한일서 4:4)는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당신은 무엇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믿음을 사용하면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희망을 마케팅하라’는 저자의 선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되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