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산책
김준호 지음 / 신론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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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산책”




가벼운 경제학을 선언하고 나선 김준호 교수의 경제학 개론서다. '경제학이 무거울 필요가 있느냐', '경제학은 학문으로 학문적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공방이 오간 지 벌써 수십 년이다. 그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실제 그보다 더했을 시간 동안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 활동을 분석하고 그 활동의 공간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고도의 학문체계를 이루었다. 학문적 기초가 쌓이고 그것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 자연히 층이 생기고 다시 그 층이 세분화되어 각종 진입장벽이 쌓이기 마련이다. 경제학이라고 예외일 수 없어서 일반인이 교양으로 경제학을 대하는 일이 녹록치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년 전 도표 없는 경제학 또는 수식 없는 경제학이 시도되기도 했다. 이후 그런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는 없다. 명맥조차 유지할 수 없는 ‘- 없는 경제학’은 이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경제학의 일 분과, 예를 들면 행동경제학이 일부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도 전혀 도표와 수식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사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 〈경제학 산책〉의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경제학이 인간의 빵문제를 해결하려는 학문이라면 그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빵문제는 눈에 보이는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일일이 계산하고 따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먹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면 복잡다단한 인간의 이성, 비이성적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인간을 다루는 학문은 심리학이 보다 직접적이다.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굳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려 한다면 그 분야는 오히려 최근 수면으로 떠오른 행동경제학에 맡기는 편이 옳다.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 가설을 전제한다. 경제학은 어느 장소와 어느 때에서든지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인간에 관한 굳은 신념을 최우선 조건으로 세운 후 학문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경제학의 확고한 전제는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찾기란 사실상 힘들다.

 

현실세계의 인간은 탐욕 등의 비이성적 행동과 제한된 정보에 의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주로 하는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제한된 인식을 학문적 전제조건으로 하는 경제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기엔 곤란하다. 빵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 빵을 먹는 인간을 경제학적 정의 내에서 살피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라거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 각각에 빵을 먹은 또는 빵을 둘러싼 이라는 형용어구가 앞서 들어가야 한다. 즉 경제학은 '빵을 먹는 인간에 대한 연구'(마샬), '빵을 둘러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엥겔스)를 다루는 학문이다. 경제학이 빵의 문제라면 더더욱 어려울 이유가 없다.

 

우린 이번 경제위기 국면에서 그 어려운 경제학으로부터 지혜를 얻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경제학을 다루는 학자에게서 경제학다운 위기분석과 위기대응을 듣지 못했다. 케인스 경제학의 거두인 폴 크루그먼 조차 침묵한 경제학자들에게 개탄의 목소리를 발한 바에야 달리 더 이를 것이 없다. 물론 그의 발언은 일부 자신을 겨냥하여 한 말이므로 책임회피성 발언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유야 어떻건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대중에게 일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구조가 다분히 오랫동안 고착화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위기가 전대미문의 사태로 번져가는 상황에서 어느 경제학자라고 유효한 판단을 내리기가 쉬웠으랴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감안이 경제학자에게 면죄부를 줄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영역에 속한다. 비중만을 놓고 보면 경제위기에 빵문제를 다뤄온 경제학자가 침묵한 일은 경제학을 유용성 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전문가의 침묵은 일반인의 침묵과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은가.

 

중차대한 시기에 전문가가 빛을 발하지 않는다면 그런 전문가를 키우는 데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은 사회는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할지 난감하다. 기회비용 측면에서도 일반인은 당연히 전문가에게 전문가의 견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정보화 사회가 전문지식 지향으로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일반인은 일반지식 습득의 기회를 그만큼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유효한 분석과 적절한 조언은 사회에 자양이다. 특히 위기의 시대에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전문가의 역할이 기대되는 때에 그 전문가가 침묵하는 일은 단순한 침묵 이상의 해악을 사회에 미친다고 봄이 상당하다. 경제위기국면에서 정보가 없던 시민들의 충격은 쇼크에 견줄만했다. 지난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로 특정 사안에 따라 트라우마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시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학이 시민적 필요에 응당 부응하는 경제학의 필요성은 그래서 경제위기 국면을 지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그 의미가 도드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시민적 요구에 응답하는 책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당초 이 책의 발간 취지로 볼 때 '시민적 요구에의 응답' 운운하는 데 가당치 않은 면이 분명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마저 '가벼운' 또는 '여기의' 라는 형용사와 어울린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경제학에 다소 과중할지 모를 부담을 지우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서민적인 경제학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해하기 쉬운 경제학, 어려운 때 길을 알려주는 경제학, 불안할 때 진정제가 되는 경제학에 대한 요구가 그렇게 지나친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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