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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심리백과 - 완벽한 부모는 없다
이자벨 피이오자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모 방송인이 그가 진행하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된 심정을 리얼하게 표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그는 진통을 시작한 아내와 떨어져 전남 모처에서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지 않은 순간에 카메라가 잡은 그의 심경은 복잡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몸에서 기대와 불안이 뚝뚝 떨어지고 나서 마침내 연락이 왔다. 감격에 사로잡힌 그는 동료들과 떨어져 조용히 숲 속을 걸어 들어갔다.
부모가 된다는 것, 그건 무척 가슴 벅찬 일임에 틀림없다. 이 세상에 자기와 꼭 닮은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부모가 된다는 것과 부모로 산다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부모가 되면 마치 모든 게 다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새로운 긴장관계가 시작된다는 걸 아는 부모는 많지 않다.
이 책은 특히 아이와의 관계에서 부모가 겪는 혼란과 미숙한 대응 등을 솔직히 그려내고 있다. 남의 아이의 실수와 잘못은 쉽게 용서하면서도 자기 자식의 그것은 호되게 꾸짖는 부모의 행동을 지적한 것이 그 예다. 저자는 여기서 더나가 자식의 실수와 잘못을 참을 만큼 참았다고 믿고 자식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부모의 심리를 거침없이 꼬집고 있다. 첫 장부터 쏟아지는 저자의 일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저자가 작심한 듯 펼친 부모의 의식과 행태 전반에 대한 비판의 칼날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공감의 폭이 상당히 넓고 크다.
이유는 저자의 비판이 대부분 실제 생활 가운데서 자주 겪는 일을 겨냥하고 있을뿐더러 그런 일들에 드러난 심리상태가 개인의 경험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데 있다. 이는 저자가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경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책 곳곳에서 만나는 사례와 에피소드들은 주인공을 '나'로 치환해도 좋을 만큼 실제적이고 직접적이다.
우선 저자는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부모의 정서적 혼란을 활자와 행간 곳곳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부모가 그런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도록 이끌고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다그치지만 실제로 자신의 불만족을 아이에게 투사하지는 않는지, 부모가 되면 이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반복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오게되는 정서적 혼란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등 저자가 언급한 혼란한 감정의 예들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런 문제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가 오래 담아둘 여유가 없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들은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자 밖으로 드러나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런 부모의 혼란한 감정을 야기한 행동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자식들의 정서적 이성적 왜곡을 바로잡을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자식은 부모와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함께 어울려 놀고 친구처럼 부모와 터놓고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런 부모는 사실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답 같은 이유 말고 저자 특유의 분석적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저자는 완벽한 부모란 없음을 전제하고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는 마음을 갖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완벽한 부모'를 이르지 않음에도 자주 또는 은연중에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 지칠 뿐 아니라 일정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자식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비판이 직접적으로 부모를 겨냥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부모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잡은 '완벽한 부모 되기'의 허상을 벗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고 감정에 솔직해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책의 부제를 '조금 느슨한 부모 되기'라고 붙여도 좋을 것이다. '어깨의 힘을 조금 뺀 부모', '아이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 덜어낸 부모',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기보다 조금은 어이없어 보이는 행동을 아이와 같이 해보는 부모'가 되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완벽한 부모보다 아이와 상대가 되는 부모가 좋지 않을까. 지나치게 긴장하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고된 부모 노릇에서 잠시 비켜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세상에 슈퍼 우먼이 없듯이 슈퍼 페어런츠도 없다.
앞서 부모가 되는 순간 아이와 새로운 긴장관계에 들어간다고 쓴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긴장관계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부모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혼란의 문제임을 알게됐다. 부담감을 벗은 부모에게서 자식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부모의 한계와 가계의 이력을 이해하고 자식의 행동을 세밀히 관찰할 때 전과 다른 관계성의 세계로 들어가리라는 기대도 해보았다.
저자의 '좋은 부모 되기' 처방은 자기를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지난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힘 또한 바로 그런 성찰에서 비롯한다. 이 책이 자식과의 관계가 긴장 관계가 아닌 사랑하고 아끼는 교호관계로 새롭게 바뀌길 열망하는 부모 모두에게 실제적인 지침서가 돼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갓 부모가 되었다면 '좋은 부모 되기'의 적절한 안내서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