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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공포의 게임 -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이용재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주식시장은 내게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전공을 투자론으로 할까 고민한 적도 있고, 경제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에 관한 관심 또한 적지 않음에도 여전히 난 주식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어느 땐 머피의 법칙이 떠올라 머쓱해지기도 했다.
투자론을 전공할 마음을 먹은 대학 4년 2학기 천만 원을 줄 테니 주식에 투자하라던 교수의 말을 난 이행하지 않았다. 돈은 가상으로 주어졌다. 신문에서 몇 종목의 주식을 택해 6개월 동안 투자한 후 그 결과를 리포트로 제출하는 과제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난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성적은 간신히 턱걸이를 면했고 그 후로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시원치 않은 성적 때문이었는지, 결국 투자론을 전공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며 급락할 때는 주식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주식에 투자해 수억을 벌었다는 말을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보면 '살인의 추억' 버금가라다. 투자론을 전공한다고 주식에서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멍석을 깔면 ‘투자론을 전공하지 못했다=그래서 주식시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그러니 그곳에서 돈이 들어올 리 없다’는 허점 많은 등식이 그럴듯하게 연관되었다. 손에 넣지 못한 살인자를 갈망하듯이 전공하지 못한 투자론에 대한 아릿한 추억을 여태 내려놓지 못한 탓이다. 강단에 서지 못한 데 따른 피해의식이 무의식 저변에 깔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떠나버린 기차와 같은 그것을 난 이와 같은 책을 만나면 어김없이 되새김질 하곤 한다. 이 책, 〈탐욕과 공포의 게임〉은 주식 관련 책이 내장하고 있는 통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통칭 주식서적은 대부분 당장 '실탄'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은 실전 투자를 지향한다. 그래야 독자를 그러모을 수 있고 돈이 된다. 이 경우 돈은 독자가 잃고 저자가 번다는 말을 실감한다. 둘째, 각종 도표로 상징되는 전문서적이 그 뒤를 잇는다. 여기서 전문서적이란 전공서적을 뺀 나머지 서적군을 일컫는다. 대개 서너 장마다 ‘무슨무슨 곡선’과 또 ‘무슨무슨 기법’이 현란한 수식을 업고 빽빽이 들어있는 전문서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공들인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글을 읽는 독자는 독자대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까, 과연 다 읽어야 하나 라는 또 다른 노고로 노심초사해야 하니 그만한 고충이 없다.
다소 설명이 길어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이 '실전'과 '전문' 사이의 틈새를 겨냥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 틈새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보기는 이르다. 설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도표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고 특정 용어에 대한 설명은 충실하지만 독서 속도를 높이는 데 거치적거린다. 실전과 전문이 지닌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책의 장점은 맹점을 파고든 솜씨에 있다. 맹점은 환상을 심어주고 의사결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는 투자금액이 많든 많지 않든 개인 또는 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자산을 운용한다는 측면에서 의사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의사결정 국면을 파고든 맹점은 되도록 배제해야 한다. 책은 투자자가 종종 오류에 빠지는 맹점들과 시장에 떠도는 확신에 찬 이론들의 허구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현명한 투자를 망친 전범인양 다루는 저자의 주장을 보면 과연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키워드는 다음 질문에 있다.
과연 투자자는 합리적인 투자자일까? 인간은 매사에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은 언제나 옳을까? 저자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저자는 행동주의 경제학적 기반 위에 섰다.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인 인간형을 상정한 저자는 같은 이유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경제학에 접목한 일군의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투자자는 탐욕과 공포에 의해 투자한다는 것. 이런 저자의 주장은 책제목에 고스란히 담겼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산업연구원의 연구원, 동아일보기자를 거쳐 메리츠증권과 부국증권에서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을 거래했다. 이론과 실물을 두루 경험한 저자의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탐욕과 공포의 경제학〉은 요즘 반토막이 났다거나 전부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말로 화제를 몰고 온 적립식 펀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이미 대박 시장의 꿈은 탐욕에 비례해서 곤두박질쳤다. 제2장, 〈시장, 바보들의 게임〉은 차트에 속고 신상품에 속는 개미군단들의 현실을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각종 통계치와 분석기법을 맹신한 투자자의 미래가 어떤 색깔을 그려낼지 돌아볼 수 있다. 장미빛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다. 제3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에서 독특한 셈법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인터뷰를 실었다. 제목 역시 1, 2부와 전혀 다른 맛을 풍긴다. 〈시장을 이기는 사람들〉이 그 소제목이다.
합리적 투자가설은 정보 입수 및 분석력, 경제적 의사결정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합리적 투자가설이 기반하고 있는 토대와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 투자자가 얻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그 정보마저 다른 투자자에게 열려있는 정보, 곧 공개된 정보다. 각종 데이터와 자료는 과학적이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지만 속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제약 조건 내에 위치한 불완전한 데이터이자 자료다. 따라서 합리적 의사결정은 애초 불가능하다.
분석자료와 분석도구마저 불완전한 시장에서 투자자자 살아남으려면 '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감을 저자는 '탐욕과 공포'라는 부정적인 말로 치환해 놓고 있을 뿐이다. 책에 인용된 각종 이론들에 대한 학적 반론도 만만치 않은 터에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감각에 기댄다한들 비합리적이라고 손가락질할 일은 아닐 것이다. 비록 제한된 정보지만 제한적이라는 전제조건 하에서라면 분석자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외부자료와 감각이라는 정성(定性)적인 부분을 잘 버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고위험·고수익이 정설인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형용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주식시장과 일상생활에 '감각'이라는 부분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 저자의 수고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탐욕과 공포'는 '수익과 손실'로 바꿔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