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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도박 - 유럽을 뒤흔든 세계 최초 금융 스캔들
클로드 쿠에니 지음, 두행숙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려 실존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소설, 『거대한 도박』은 무대로 삼은 영국과 프랑스가 장식적 요소 외에 별다른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장쾌한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아쉽다. 물론 그 한계는 이 소설이 실존 인물을 전면에 배치한 한계 내에 존재할뿐더러 예상과 달리 그 한계라는 것이 상수로 작용함으로써 스토리의 자기서술성과 자기 완결성을 방해하고 있음은 충분히 변명의 여지가 된다. 주인공이 걸어간 행적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창작이 가능하지만 그와 얽힌 굵직한 사적 기록은 변형이 쉽지 않은 제약조건 내에서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주인공은 알려진 대로 '전설적인 도박사이자 천부적인 수학자, 최초의 백만장자이자 시대를 앞서간 화폐개혁자'로 묘사된다. 그의 행적과 관련해서 우선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화폐를 시장에 도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이라는 것이 결국 저자가 말한 바 최초의 금융 버블 또는 금융 투기라 할 수 있는 '미시시피사건'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씁쓸한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가 현재 지불수단으로서의 활발하게 유통되는 지폐의 효용성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는 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당시로선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금융이라는 분야에 뛰어들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해밝은 실물 경제를 바탕으로 한 나라의 경제 프레임을 재설계하려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그가 처음부터 돈을 노렸건, 호의적으로 평가해서 경제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혁신하고자 했건 어느 경우에도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적이라는 암초를 그 또한 피해가지 못했으니 이점은 두고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실험은 개인적인 차원에선 실패했지만 그가 남긴 금융 시스템과 지폐의 활발한 유통은 현대 경제의 기조를 탄탄히 구성하고 있으니 이 또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엄연한 소설이면서 또한 당시 시대상을 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로 읽히기도 할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미시사를 관련 자료를 찾는 수고와 관련 자료들이 파편적으로 담고 있은 사실(史實)을 퍼즐을 맞추듯이 촘촘히 연결한 노력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가치가 될 전망이다. 역사란 일면 우월한 자의 입장에 선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복원해낸 점도 돋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본래 주어야 할 재미를 상당 부분 사적(史的)으로 기록된 인물의 행적에 잠식당하고 있는 점은 다시 말해도 아쉽다. 드라마틱한 인생에 초점을 맞추려는 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같은 부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책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점은 장점대로 승계하고 마찬가지로 단점을 단점대로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소설의 전형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이 책의 소임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인물소설의 장르가 일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