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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삼국지 1 - 한중일 삼국의 바둑 전쟁사 ㅣ 바둑 삼국지 1
김종서 지음, 김선희 그림, 박기홍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한국 바둑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4인방. 그 정점에 조훈현이라는 걸출한 기사가 있었다는 것쯤 다들 아실 것이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잉창치배를 석권하고 이후 한국 바둑계를 호령한 그이지만 그 또한 신예 기사인 이창호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 부침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상 위의 세계. 그것을 일컬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바둑에 문외한이라 그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집을 짓고 세력을 넓힌다는 바둑 용어들에서 왜 바둑을 그렇게 말하는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잉창치배는 옅게 기억이 난다. 다 이긴 바둑을 마지막 승부처까지 몰고 갔다고 조훈현을 욕하던 사람들과 네웨이핑이라는 거성을 향해 대담한 행마를 보인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 틈에서 난 단순히 우리가 이겼으면 하고 바랐다. 1988년의 일이다. 당시 어른부터 아이까지 승부거리만 생겼다 하면 무조건 우리나라가 이겨야 한다는 강한 승부욕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져도 실력이 없어서 졌다고는 하지 않고 상대가 술수를 써서 그렇게 됐다고 말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 대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면 단연 조훈현보다 네웨이핑이 앞섰다. 네웨이핑의 입장에서 조훈현은 신출내기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조훈현이 결승전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세계 최고의 기사라고 치켜세웠다. 그래서 조훈현이 두 판을 이기고 내리 두 판을 내주자 조훈현이 상대를 지나치게 얕잡아 보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언론이 한몫 했다.
2대 2가 되고 나서 마지막 대국을 앞둔 어느 날 비로소 전력 상 조훈현이 네웨이핑에게 뒤진다는 기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사를 시작으로 비로소 신문사들이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내놓았다. 그리고 국민은 저마다 마지막 대국에서 그가 멋진 승부를 펼쳐주길 바랐다. 승리가 아닌 멋진 승부에 대한 기대. 관점의 차이는 컸다. 나부터 편하게 그 대국을 지켜봤으니까 말이다. 조훈현이 이겼고, 그는 당시 대단한 영웅이 됐다.
이 만화는 주로 그의 이야기다. 크고 시원한 그림과 간결한 문장이 특징적인 이 책은 그림과 글, 기획 등의 분야를 세 사람이 나눠 맡았다. 1인 책임 편집이 아닌 분할 작업의 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문장의 호흡이 빠르고, 그림은 문장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 거침없이 내달린다. 소년 시절 조훈현의 속기를 재현한 듯한 빠른 속도감에 읽는 재미가 붙는다. 이제 1편이다. 후속편을 통해 바둑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멋지게 갈무리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