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의 기술
카네스 로드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때가 1532년이다. 그로부터 476년 후 현대판 군주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목적 성취에 대해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권력 쟁취에 관한 한 우월한 힘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다만 저자가 권력의 핵심에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현실 정치 세계를 세세히 묘파하고 있는 점은 공로로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수고로 그 동안 이 분야의 책들 속에 상존해 있던 현실과 괴리된 이론의 남발 현상이 다소나마 차단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논란마저 식지는 않을 전망이어서 이 책의 독법은 '삐딱한 시선(또는 불편한 심기)'과 '현실 인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독특한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식에 의해 값이 나오는 수학과 달리 정치는 피치자와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축적된 집합체여서 변화 양태가 다양할 뿐 아니라 대상에 따라 실제 적용 또한 변화무쌍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만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산 백과 사전은 정치를 '통치와 지배, 이에 대한 복종 ·협력 ·저항 등의 사회적 활동의 총칭'으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 정가에서는 그것을 생물에 빗대기도 한다. 학자의 수만큼이나 학제적 정의 또한 많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정치를 정의하려는 사람들 모두 정치가 변화무쌍하다는 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정치가 현실에 뿌리 박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한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의 통치를 중심으로 보면 정치역학이 고도로 발휘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은 통치행위를 이유로 법 위의 법을 세울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은 일견 입법과 사법의 그것을 훨씬 앞지른다. 따라서 대통령은 과거 정권에서와 같이 강력한 대통령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대북 특검에서 본 바와 같이 통치행위 또한 법적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학습되고 대통령이 나서서 권력과 권위주의를 허물려는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성역에 대한 새로운 지평(관념)을 세우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정당한 권위가 훼손되고 합법적인 통치 행위마저 부인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보편적인 의미의 통치 행위에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지난 대통령이 정당한 통치 행위 조차 상당부분 저항에 직면해야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우린 보편적인 의미에서 통치행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지나친 권위주의'와 '경박한 권위'의 폐해를 두루 경험한 만큼 통치행위의 역할 모델을 시급히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그 노정에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만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라는 책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바람직한 통치 행위의 모델을 세우려면 현실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자 전제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 정치를 실현하려는 적극성을 발휘함으로써 끊임없이 정치 이상을 현실의 자리로 가져오려는 노력을 거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야 비로소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국민이 자발적으로 국가적 비전을 향해 질주하는 정치가 가능해 질 것이다.
 
역사를 '이상의 현실화 과정'으로 정의한 노교수의 역사관을 넓은 의미의 정치에 적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치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할 시점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여파가 국민경제를 더욱 옥죄는 양상과 동서(지역)와 남북(경제)으로 분열된 국민의식의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에서 우리 정치가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에 매몰되는 건 좋지 않다. 이 시대는 카리스마를 지닌 강력한 군주를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양극화 해소와 지역주의 혁파를 위한 국민통합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책은 통합의 비전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리더의 역할을 중심으로 읽히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