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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감성 - 기업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시마 노부히코 지음, 이왕돈.송진명 옮김 / GenBook(젠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각각의 시대는 그 시대만의 냄새와 정신, 사상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십분 공감하며 읽기 시작한 책은 제목이 주는 선정성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데 놀랐습니다. 이런 인식은 기대했던 바와 다른 소득 때문인데요. 역설적이게도 책 제목이 기여한 바가 큽니다. 지각 있는 독자라면 대부분 선정성 높은 책 제목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라 일견 '돈버는 감성'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 또한 제목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펼쳐든 책은 서문을 채 마치기도 전에 몸을 곧추세워야 했을 정도로 잔상이 오래 남았는데요, 오랜만에 맛보는 거시적 관점에 숨통이 다 트일 정도였습니다. 서문은 경제와 정치 전반을 바라보는 저자의 정치한 안목이 번득일 정도로 선이 굵고 장쾌하더군요. 이후로 책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진 것을 두고 이상하달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씨줄과 날줄이 된 전문성과 현실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글의 전문성은 저자가 배경으로 갖고 있는 기자정신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사 입사 후 도쿄 본사 경제부와 워싱턴 특파원을 거친 이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데 동의하실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양대 산맥을 두루 등정한 저자로선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숲을 조망하되 나무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전문가적 기질이 그런 이유에서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현실성은 기자정신이 토대로 삼은 감각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의 감성은 현실을 딛고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기자의 투입과 산출이 눈에 보이는 사건과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전문성과 기자정신이 일관되게 첫 장과 마지막장을 관통하는 책은 시대정신과 그 흐름에 반응하고 분석하며 배열하는 저자의 엄밀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1장 전면에 무거운 주제어가 배치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아닙니다. 무척 다감한 단어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단어가 쉽게 받아들여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는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의 소유자라는 도식적인 이미지가 다른 직업인이 사용했더라면 용이하게 받아들였을 그 단어를 적절치 않게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은 저자가 21세기를 지배하는 키워드로 든 '감성' 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가 기자 정신의 밑바탕인 현실성과 다분히 배치되는 추상적인 용어를 키워드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남성이 주도하던 20세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효율, 품질, 저렴한 가격' 등이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물건을 만들면 그것을 사갈 사람이 언제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시장 개척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시대는 공급자 시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차츰 구매자의 원츠와 니즈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가면서 공급자 시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컨슈머리즘의 태동은 그 결과입니다. 구매자 중심주의가 고도화하자 구매자 시장의 주도권은 바야흐로 여성에게로 넘어갑니다. 여성은 위에 든 남성의 트레이드마크를 '안전·안심, 청결·건강, 살기 편한 커뮤니티' 등 21세기 코드로 교체해 버립니다.
전환의 시대에 가치 변화의 추세를 통찰한 저자는 예의 그 분석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논지를 거침없이 이어갑니다. 시대적 요구 사항에 충실할 것은 주문한 저자는 곧바로 방법적 대안 탐색에 들어갑니다. 그에겐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성장엔진이 중요했습니다.
"일본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구조개혁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1세기의 감성으로 기업과 지역의 전략을 고려함과 동시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내는 일이다."
미국이 IT와 바이오,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유럽은 EU라는 제도를 토대로 같은 기회를 포착했던 것처럼 일본 또한 차세대 성장엔진을 찾아내고 그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고언은 시의적절하며 상황적합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저자가 성장엔진으로 제시한 생 에너지와 환경기술이 이미 그 분야에서 기술 축적이 상당한 일본에게 적합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화의 파고가 과거 어느 때보다 거센 현실 앞에 힘겨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대한민국호가 장착해야 할 엔진 또한 한시적이거나 임시방편적인 처방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될 일이겠지요. 지나치게 현실 수익에만 매몰되어 거시적인 이익을 놓친 다든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흘러 판단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를 내내 달고 다녀서도 곤란한 일입니다.
책에 기록된 다양한 기업의 다양한 성공 사례들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직접적이며, 사업과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이 시대 변화의 방향과 구성원의 선택의 문제에 의문부호를 날리는 개인과 기업, 사회에 질 높은 영감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