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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예배
마이크 필라바치 지음, 채수범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예배와 희생이 일란성쌍생아라는 사실을 이 책만큼 실감나게 그려낸 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보면 어떨까요? 희생 없는 예배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예배 없는 희생은 만용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스르려는 본성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 만족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헌신을 자기를 드러내는 도구로 손쉽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과연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지', 자기 위안을 삼고자 '예배 시간에 참석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예배에 관한 한 실질에 있어서 지금도 모델로 삼고 있는 구약의 제사를 살펴보는 것이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첫 예배를 시작하는 장면과 다윗이 언약궤를 옮겨오는 장면을 중첩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희생이 어떤 모양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에 22,000 마리의 소와 120,000 마리의 양을 불살랐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맨 사람들이 여섯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왕의 체신은 아랑곳 않고 옷이 흘러내릴 정도로 춤까지 췄습니다.
저자는 솔로몬이 바친 제물이 당시 이스라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의 제사 또한 상식적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의 성까지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무리 작은 거리라고 해도 여섯 발자국마다 제사를 드렸다면 불사른 제물의 수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왜 그들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을 했을까요? 양과 염소를 잘 고아 백성들에게 먹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의 가치를 더 높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연인의 태도와 견줄 수 있습니다.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가장 좋은 것을 주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솔로몬과 다윗, 그리고 백성들은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표현 또한 제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터무니없이 상식 파괴적입니다. 또한 현실 위에 붕 떠 있는 사람처럼 이치에 맞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면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충만함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당신이 가진 가장 값진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연인 관계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외면하고 심지어 저주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독한 외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를 깨달은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 사랑이 어땠을까요? 시간 맞춰 예배시간에 참석하는 것에 만족했을까요? 말씀이 들려오든 들려오지 않든 무덤덤히 예배당을 나섰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타게 찾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가슴 절절하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위해 정말 좋은 것을 드리고 싶은데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관점이 바뀐 자의 애탄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벅찬 심정을 하나님이 가지셨을 것이라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솔로몬과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 제물은 그것을 표현하는 한 조각 애닮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어느새 정례회의처럼 돼버린 우리의 예배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그리고 다시 그 예배에 불이 붙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