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언어』는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방언의 능력과 비밀의 준령을 미지의 땅을 밟는 구도자의 진지한 걸음과 환희에 찬 시선으로 힘차게 넘나들며 꼼꼼히 탐침(探針)해 들어간 보기 드문 수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초대교회의 역사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방언을 통해 시작되었듯이 선교 100주년을 맞아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부흥'을 고대하는 이 땅의 시작 또한 성령의 은사인 방언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실제 그와 그 주변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책의 전편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저자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방언이란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계획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내밀한 언어이자 악한 영의 세력을 파쇄(破碎)하는 강력한 무기"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방언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고 그것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기존 교단의 시각에 정면 배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언은 성령의 선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교계의 풍토를 염두에 두면 저자의 생각은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과연 방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찮게 취급될 성질의 것일까? 성경연구와 복음전도에 전념하는 지성주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성주의는 성경연구에 관한 한 탁월한 모델을 제시해 왔으며, 선교 단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반면 성령사역은 강조되지 않았다. 그것은 묵시적으로 신비주의의 한 형태로 취급되었다. 사정이 그렇다고 성령사역의 필요성이 감쇄(減殺)될 수는 없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요구되는 곳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국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령사역을 강조하는 은사주의 교단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복음주의 교단이 성령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방언 또한 최근에 이르러서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듯하다. 편견이야말로 파쇄되어야 할 견고한 진일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당신이 뜻하신 목적을 이뤄 가시지만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성경 속에 살아 숨쉬는 성령사역을 도외시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확장 속도가 더디 이뤄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내내 성찰과 회개와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성령에 붙들린 이후로 그분께 절대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깨닫게 된 방언의 의미는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은혜의 통로'라고 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린도전서 2:7)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듯이 하찮게 취급된 방언을 통해 크고 비밀한 일을 이뤄 가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이뤄 가실 것임을 본 저자는 방언에 관한 성경말씀을 두루 꺼내 그 말씀들이 오늘날 어떤 모양으로 해석되고 실제화 되었는지를 '바로 그 방언'을 통해 변화되고 영적으로 성장해 간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소설처럼 빠르게 읽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방언의 은사에 대해 열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언이 하나님 나라를 여는 구체적인 통로임을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보았습니다.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