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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설은 일견 이치에 닿지 않는 듯하지만 곱씹어 보면 놀라울 정도의 함의를 담고 있는 논증을 일컫는 말입니다. 역사는 실제 일어난 사실의 기록이므로 이와 같은 역설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는 조금 밋밋합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시각과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발간된 역사소설이 주는 무게감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소설이 센세이셔널하다거나 획기적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뭐 이리 박진감이 없어’, 하는 맥 빠진 소리부터 나올 소지가 큰 소설입니다. 주제 또한 썩 내키지 않습니다. 패배한 역사보다는 성공한 역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를 단박에 저버린 소설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잘 아시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이 우리에게 뼈아픈 전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소재로 소설을 쓸 요량이라면 그 와중에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산화한 의병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면 얘기하고도 좀 낫고 모르긴 해도 민족적 자긍심도 생겼을 겁니다. 그런데 소설은 마치 작심한 듯 남한산성에서의 항거와 삼전도의 굴욕을 중심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읽기도 전에 뻔하다고 생각할만한 소재입니다. 굳이 왜 굴욕적인 역사를 들춰내려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독자의 소리가 공개적으로 들릴 만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읽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소설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이렇게 조응하고 싶습니다. 실패한 역사 속에 기어코 감추지 못한 깊은 생채기가 되살아나는 아픔이 살을 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 또한 우리 선조가 살아낸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뭐 그런 것입니다. 이런 말이야 제가 생각하기에도 상식선에서 벗어나지 않은 뻔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뻔한 말 속에 미처 곱씹지 못한 진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소설은 역사소설이라면 이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일반의 시각, 곧 큰 스케일에서 오는 웅장함과 도도히 흐르는 대하 앞에 선 인간의 깊은 탄식과 숙연함, 각양각색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인물의 생멸이 가져다주는 긴박감과 그들 사이의 일진일퇴의 공방이 초래하는 박진감 등등을 이 소설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심인물이라고 해봐야 김상헌을 필두로 한 주전파 몇몇과 주화파의 거두 최명길과 주변인물들이 전부일 정도로 옹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탁월하냐 하면, 저자에게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스토리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고, 인물들의 성격은 다면적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딱히 이 소설은 그래 이것이다 할 정도로 무언가 독자의 심중을 콱 박는 결정적인 무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 환호하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론 독자들의 열광이 이 소설의 미덕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패한 역사를 정면에서 응시하는 건조한 눈. 전 이 소살의 탁월한 가치를 이 부분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역사소설이 갖춰야할 미덕을 전혀 갖추지 못한 소설이 오늘 놀라울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역설입니다. 그런 역설은 이 소설이 통상적인 역사소설과 다른 데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각을 열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통할 것입니다.
자학과 피학이 뒤엉켜 모멸감이 극에 달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자학과 피학이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자각의 과정이었다고 하는 묘한 인식적 전환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한순간도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도리개질을 해도 심중엔 그래도 한번쯤이야 돌아봐도 괜찮겠지 하는 독자의 복합적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관음증과도 같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소설이 훔쳐보기가 주는 짜릿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이 궁극적으로 이 책이 여타 소설과 다른 맛을 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일종의 지적 탐험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삐 살다보면 평소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한 치 건너서 볼 수 있는 기회, 사실 많지 않습니다. 선선한 가을날,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훔쳐보는 짜릿한 별맛을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