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후 직업의 미래 살림지식총서 288
김준성(김농주) 지음 / 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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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한미 FTA가 몰고 올 생활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한미 FTA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단순하게 양분할 수 있겠지만,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그 결과를 꼼꼼히 따진다는 것이 어렵다. 협정서의 양이 만만치 않기도 하거니와 생소한 외교 용어와 협상 문구, 법조항 해석에 이르기까지 난제마저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시장 통에서 유포되는, ‘아마 그럴 것’이라는 미확인 정보에 의지하기에는 법률, 의료, 금융, 부동산, 제조업 등 사회 전부분에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한미 FTA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크고 그 여진 또한 상당하다.

 

물론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일반인이 전문적인 사고와 판단, 분석을 요하는 사안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 그런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되겠지만 문제는 ‘당장 내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해하다’는 생각, 일종의 님비현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사회 현상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일부분 보다는 광범한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일반인이 분석적인 사고를 멀리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부의 효과가 크다. 문제를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가 막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당장 큰 일 낼 듯이 여론이 들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사라지는 심리를 비꼰 조어였다. 이번 한미 FTA가 그것을 다루는 일반인의 행태로 인해 또 다른 형태의 냄비근성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적확한 정보의 제공’과 ‘손쉬운 정보 액세스’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열린 정보 아래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구조가 확립되어야 한다. 물론 합의사항 중에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다른 부분마저 투명하게 공개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길지 모른다.

 

정부와 반대자, 그리고 일반인 모두 상대방이 입장을 호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잖은가. 돌이킬 수 없다면 적어도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공통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확한 정보의 제공’과 ‘손쉬운 정보 액세스’는 더없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문가에게만 열린 정보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정보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문서와 책의 출간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마침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미 FTA가 향후 직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책이 출간되어 다행스럽다. 연세대 직업평론가가 쓴 이 책, 『한미 FTA 후 직업의 미래』는 소책자의 특성상 군더더기가 없다. 법률, 의료, 금융, 문화산업 등 각각의 분야에 한미 FTA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어떤 방식으로 직업의 형태를 바꿀지 예측해 놓았다. 아울러 향후 어떤 직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들고, 또 어떤 직업이 상승일로를 탈 수 있는지, 또 어떤 직업이 새로 탄생하게 될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런 이유로 사회초년생이건 자기 직업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건 수년 내에 각광받을 직업의 프레임을 그리기가 용이하다. 전문적으로 파고들려면 이 책 외에 관련서적을 뒤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입문서로서의 기능만 따진다면 이 책이 충분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론이라 할 수 있는 〈한미 FTA 이후의 변화〉에서 “한미 FTA 이후 한국 사회는 큰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취약한 산업의 생산력이 약화되고, 구조조정은 심화될 것이다. 소득 불균형의 확대와 함께 자원배분의 효율성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비숙련노동자의 입지는 더욱 약화될 것이다. 아울러 직업 환경에도 양극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칠 것이다”, 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가능성 또한 열어두고 있다. 한미 FTA가 일부 품목에서 무역 및 투자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렇게 되면 효율이 떨어지는 산업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에게 효율이 높은 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기회가 많이 생길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국제 시장에는 냉정한 경쟁논리만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저자의 절망은 일부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변화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면 그 분야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판로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변화에 둔감하면 도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조언 또한 잊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희망은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는 측면에서 반쪽자리 희망일 뿐이다. 그만큼 한미 FTA가 몰고 올 폭풍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한미 FTA의 명암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개인적인 차원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사회문제를 개인이 모두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가 전부 부담하기에도 만만치 않다. 개인과 국가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하고 보조를 맞추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늦었다고 모두 그르치는 건 아니다. 우린 늘 이렇게 말해오지 않았는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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