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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여주인 ㅣ 프랑스 현대문학선 24
레몽 장 지음, 이재룡 옮김 / 세계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까페 여주인이라는 이 소설에는 돈이라는 주제도 언급되고 외모로 얻어낼 수 있는 타인의 애정, 외모와 비례하는 여성의 능력,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 상대방에 대한 끌림, 화술, 지적인 매력, 어수룩한 여성과 이를 농락하는 남자, 여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유치한 질투, 경제적 여건 때문에 아내의 외모를 이용하는 소심한 남편, 비밀과 비밀이라는 약속의 허무함 등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난 자꾸 왜 삐딱하게만 보는지. 까페 여주인이라는 주인공의 신분 자체가 정도 남자들의 희롱 대상으로 쉽게 낙점되기 좋은 설정이었다는 생각. 이 까페는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은 아니었고 맥주도 판매하는 까페였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인 빵집 주인, 우체국 직원, 그리고 페미니스트 등 이런 등장인물과는 애초에 남자들의 접근성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왜 예쁜 여성은 남자들의 농락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왜 대부분의 소설은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장난치는 내용인지, 왜 그 반대는 많지 않은지, 이 소설은 남성 작가가 아무 의미 없이 단순하게 그려낸 장난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작가는 이런 소설을 어떤 의도에서 썼는지. 푸하, 숨차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들다보니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까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든다. 그래서 슬쩍, 생각을 접는다. 소설을, 짧은 이야기들을, 어떤 현상을,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이야기들을 자꾸 풀어내는 것이 스스로 지겹기도 하고, 이제는 무언가 새로운 줄거리들을 찾고 싶기도 해서.
그랬더니 할 말이 없어졌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많은 생각 거리들이 담겨져 있었는데 그 중에 내가 덧붙이고 싶은 주제가 없다니. 당황스럽다.
쓰기 어려운 서평은 바로 이럴 때다. 흔히 책 내용이 어려우면 서평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기 쉽지만 가장 서평 쓰기가 난해할 때는 할 말이 없을 때. 감동이 없고 울림이 없고 하다 못해 울분마저 스스로 외면해 버리면, 주절주절 신나게 떠들 수가 없다. 재미는 있었는데 별로 할 말은 없는 소설이면 한참 동안이나 빈 종이를 멍하게 응시하게 된다.
왜 할 말이 없게 되지?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지 못했거나 작가의 의도를 미처 알아채리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번처럼 어느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 아프게 되풀이하기 싫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이겠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오랜 시간 키보드를 두드리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모르는 더 큰 세계가 있는 건지, 지금의 작은 나로서는 그 심오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건지.
두려운 고백인데, 혹시 내가 요즘 멍하게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 겨우 30대일 뿐인데, 20대 때의 치기를 스스로 포기한 건지. 편안하고 안락하고 무난한 삶에 벌써부터 안주하는 건지. 요즘 살 만 한가. 이런. 100살이 되어서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밤이슬 축축한 들판에서도 반짝거리는 별들을 바라보며 싱싱하게 살아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