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다.
그래서 그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밑바닥까지 공감한다.
실제로 내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와 처지가 똑같다는 이야기다.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빛내주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감 없는 소시민.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게 전부인, 오늘도 내일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진부한 직업을 때려치고 싶지만 직장을 뛰쳐나오면 그나마 따박따박 나오던 쥐꼬리마저 사라지게 되고 그러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또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 만한 다른 재주마저 없어 그저 하루하루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퇴근 후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서글픈 샐러리맨들의 모습. 우리들 대부분의 초상이 아닌지.
다들 그러고 산다든지, 매일매일이 지겨워서 힘겹다든지, 탈출을 하고 싶다든지, 이런 뻔한 이야기는 이제 조금 지겹고.
나는 잘 살고 있지?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잘 찾아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고, 잘 웃고, 깔깔대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기를. 화려하진 않아도 후질그레 어깨 처지지 않기를. 인위적으로 괜찮아, 괜찮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충만함이 해질 녁 자연스럽게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온 몸으로 느껴지기를. 한 우물을 파지 못해 스스로 자책하기 보다는 이거 해보다 저거 해보는 변덕쟁이라도 순간 순간 만큼은 그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기를. 해가 진 저녁, 아무 할 일 없이 느릿느릿 공원을 산책하며 이런 저런 되도 않는 상상을 마음껏 해보기. 퇴근 길 늘어나는 몸무게 걱정은 잠시 잊어 버리고 달콤한 머핀을 사 들고 뒹굴뒹굴 책을 읽으며 한 입 베어 먹기. 어떤 일이든, 잠을 줄이면서 아둥바둥 억척스럽게 매달리지 않기.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시간을 흘려 보내기. 가끔은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재미있다 생각해 보기.
이 정도면. 잘 사는 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