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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ㅣ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거의 누구에게나 고독을 버리고 아무하고나 값싼 유대감을 맺고 싶고, 마주치는 첫 번째 사람, 전혀 사귈 가치조차 없는 사람과도 자신의 마음을 헐고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바로 이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보통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시끄럽게 밖에 나가서 피곤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집에서 조용하게, 대부분 뒹굴거리지만, 그래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주말에는 늘어지게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다시 한주일을 지낼 힘이 생긴다. 집안 행사다, 교회다, 친구들이다 주말을 떠들썩하게 보내면, 일요일 밤, 왠지 혹사당하기만 하고 쉬지는 못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하다. 심심해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자꾸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고, 친한 친구들을 불러낸다. 공교롭게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면 보지도 않는 TV를 켜고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화면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자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릴케의 충고처럼, 자꾸 사람들과 값싼 유대감을 맺느라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조용히 내 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말하는 것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내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들이 쉬운 것은 아니다. 골치 아프고, 재미없고, 때로는 답이 없어 자꾸 한숨만 나오고, 피곤하다. 그러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오락을 하고, 쇼핑을 하는 것은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다. 때로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내려놓고 즐겁게 사는 것이 긍정적인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자꾸 명상보다는 오락에 열중한다.
오락에 열중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지내는 것이 가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왜 고독 속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왜 명상이 쇼핑보다 가치있는 일이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고독 속에서도 철저히 혼자일 수 있을 만큼 단단해 지는 것이다. 누가 옆에 없더라도, 이야기 할 사람이 없더라도, 아무도 내 의견에 찬성표를 던져주지 않더라도, 나 혼자 꿋꿋해져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외로운 고비마다, 내가 친구를 만날지, 아니면 혼자 고독을 즐길지 선택할 수 있어질 게다.
'값싼 유대감'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상대방에게 쏟아내고, 돌아서서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시시껄렁한 사람들과 몰려다니면서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버린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시시껄렁한 사람들로부터 후에 뒤통수를 맞은 적은 얼마나 많은지. 그 때마다 그러지 말자 다짐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릴케의 조용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