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 -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나를 사랑하는 법
데브라 올리비에 지음, 이은선 옮김 / 웅진윙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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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단 말이야? 프랑스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개성을 사랑한단 말이야?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프랑스 여자들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단다. 튀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우리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착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와 달리, 그녀들은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누구와든 논쟁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단다. '졸리 레이드'. 비전형적으로 예쁜 여자라는 뜻이란다. 프랑스 여자들은 누구나 스스로를 졸리 레이드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을 갖는단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금발에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들을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단다. 자신도 충분히 아름다우므로.

이런 프랑스 문화가 부럽다. 프랑스에 가 본 적이 없어 이 책에 있는 내용이 모두 다 사실인지 아닌지, 과장된 면이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각기 다른 생각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프랑스, 그리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이 마냥 부럽다. 억압하고,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모난 돌이 정맞는다며 개인을 목졸라 숨막히게 하는 우리네 정서와 너무도 확연히 비교돼서.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더 자유롭고 자신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을까? 어디서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씩씩하면 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손가락질이 괜히 힘들 때가 있다. 그냥 그럴 때가 있다. 주변 분위기 때문에 괜히 위축되고, 다른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부담스러울 때. 개념없이 함부로 내뱉는 무례한 말들, 너는 왜 그리 까칠하냐는 힐책들. 도대체,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거냐고!! 왜들 남들 일에 그렇게 관심들이 많은지!! 다름과 차이라곤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는 억압적 분위기. 정말 막무가내다.

책을 읽고 프랑스는 정말 좋은 것 같아서, 그런데 저자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어서 동생한테 물어봤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려는 막내동생이다. 왜 하필 프랑스야? 다른 여러 나라도 가 봤는데 왜 프랑스에 꽂혔어? 공기가 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랑 말하는 게 우리랑은 완전 다르다고! 우리나라에선 답답해서 못 살겟어! 동생의 대답이었다. 그래? 프랑스에 가보지 않은 나로선, 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는데 뭐. 그렇구나...

나도 가보고 싶다. 지금의 상황들을 모두 훨훨 털어버리고. 지금 매여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 내 어깨에 짊어져 있는 무거운 짐들. 나도 한 번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결국은 내가 선택해야 할 일인데. 막내동생처럼 약간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혹은 약간은 무모한 용기로. 그냥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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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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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말라 갈라진 건조지대보다는 부드럽고 촉촉한 초원이 왠지 더  풍성해 보인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강팍한 모래사막보다는 수분기 가득한 이끼에 더 많은 생명체들이 둥지를 튼다. 역시 강팍하고 메마른 마음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도는 미소가 사람을 넉넉하게 만든다.

마음이 흐믓해지는 소설이다. 건지 아일랜드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처럼 생각되고, 서로 서먹서먹하기도 했던 주인공들이 가족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참 살 만한 곳인 듯 여겨진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킷을 친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킷을 입양하는 줄리엣, 묵묵한 사랑을 보여주는 도시, 발랄한 매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솔라 등. 인간적인 애정이 무엇인지, 타인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느끼게 해준다.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소설이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게 읽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소설 역시 가치있다. 독자에게 힘이 된다.

이런 감상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적인 면만 열거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상황은 2차 세계 대전이었고 건지 섬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킷은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고아고, 고아라는 결핍은 평생 킷을 따라다닐 테고, 주인공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는 수용소에서 총살당했고, 하루하루 일상은 지겨울테고, 고기잡이 배를 타고 농사를 짓고 지붕을 수선하고 닭을 치고 매일 세끼를 만들어 먹어야 하고, 옷도 수선해야 하고, 장작도 패 놔야 하는 지긋지긋한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매일 넘쳐날테고. 그런데 저자는 이런 우울함이나 슬픔, 고통, 일상의 지겨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 한가로운 산책길과 이 모든 것에 걸맞은 사람들에만 집중한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저자와 주인공은 엘리자베스를 이제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는 그녀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숭고한 사랑과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래도 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 삶이 항상 화창한 것만은 아닌데. 생을 너무 아름답게만 미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잠깐. 결국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똑같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는 어떤 이는 어둠을 보고 어떤 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세계 2차대전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에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은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애정을 돈독히 다지고,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희망으로 기다린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몫을 건네주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 약을 발라준다. 엘리자베스가 폴란드 노동자를 숨겨준 것처럼, 독일 병사들도 일부러 감자 자루나 설탕자루를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척 주는 것처럼. 어디에서든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심과 휴머니즘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 세상을 오래 산 할머니 저자의 소설이라 그런지, 그녀의 소설에는 인간미와 꿋꿋함, 강인함과 온화함이 곳곳에 배여 있다.

삶을 이렇게 마주해야 겠다. 엘리자베스처럼 용감하고 씩씩하진 못하더라도. 소망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따뜻하게.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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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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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표정. 미간에 살짝 들어간 힘.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드세 보이는 인상이다.

자신을 향한 '드세다' 라는  세간의 평가를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평가일 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다. (강하다, 라고 표현하려고 했으나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속으로는 여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에, 평범하지 않다, 라는 단어로 수정했다. 혹시나 상처가 될 수도 있을까봐.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평범하지 않다는 말도 상처가 될 수 있겠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는 한 개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난도질하는지.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내린 평가는 늘 누군가를 겨누는 칼이다. 미안하다.) 그녀는 똑똑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이 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꿋꿋하며, 재능도 있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내뱉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비꼴 줄도 알고, 그런 말들에 기죽기는 커녕, 오히려 또박또박 시시비비를 가릴 줄도 안다. 핸드폰에 종속되기는 커녕, 핸드폰의 피곤함을 인지할 만큼 자유롭다. 남들이 보면 혼자라 심심하겠다지만, 자신만을 위한 오롯한 그 시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맛볼 줄 아는 사람이다. 멋지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자신을 갖게 되기까지 그녀는 어쩌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 왔을 수도 있다. 인터뷰도 꺼리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그녀의 작품을 해석하는 사람들, 이에 대해 항변하니 오히려 작가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니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게 아니냐며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언론사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대한 한국사회로부터 받았을 소외감과 열등감. 못 하나 박기에서부터 전등갈기까지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혼자서 모두 해 나가야 했을 억척스러움. 멋진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가끔, 그런 자신이 힘겨웠을 수도 있겠다. 특히나 이렇게 멋진 그녀가, 다른 여자들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산다며(실제로는 뭐 그리 크게 다르지도 않지만) 여자가 너무 드세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면, 나는 왜 이리 혼자 모난가... 우울해 질 때도 있었겠다.

그녀는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번도 힘에 부치지 않았다고, 당당하고 지적인 내 모습이 언제나 사랑스러웠다고,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유추하는 게 사실은 무례한 일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위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나의 이야기다. 그녀가 힘들었겠구나...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힘들었었다... 하는 하소연이다.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속은 여려서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나는 몇주고 몇 달이고 곰곰히 생각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나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 칼이 되어 자신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느끼는 주체도 그녀가 아니고 나다. 너무 대가 세다라는 주변의 평가에 나는 왜 다른 여자애들처럼 유순하지 못한가, 슬퍼지는 것도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당차지도 못하고, 생각보다 그렇게 줏대있지도 않고, 생각만큼 그렇게 강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녀의 일기장을 계속 엿보면서 그녀가 반갑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녀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를 닮으면 어쩌나... 아니, 이미 그녀와 많이 비슷한 내 모습이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녀만큼 잘나지도, 그녀만큼 똑똑하지도 못한 나는 그녀처럼 나보란 듯, 씩씩할 자신이 없어서...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일었다. 과격한 그녀의 표현이 내내 거북했다.

때론, 이런 어정쩡한 내 모습을 다루는데 나도 애를 먹는다. 소신껏 주변 사람들의 난도질 따위는 쿨하게 씹어 버리든지,  아니면 그냥 남들처럼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든지. 그 둘 사이에서 괜히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공연히 돌을 맞고 혼자 쩔쩔맨다. 어떤 날은 내가 너무 까칠했나 후회하다가, 어떤 날은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상황에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졌나보다 씁쓸해 하기도 한다. 어쩌면 10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왜 그녀처럼 끝까지 꿋꿋하지 못하고 주저 앉았나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평생을 나는, 고민하고 방황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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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2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고민을 하는지 몰랐네~~

옥이 2011-04-2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ㅋㅋ 그럼 남들 눈엔 내가 어찌 보여요? ㅋㅋ
 
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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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 이 단어가 다가왔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기억의 첫 장면은 뭘까... 조금은 들뜬 설렘으로 천천히 시간을 되돌려 본다.

호선이가 생각난다. 6살인가, 7살인가 옆집에 살고 있던 내 친구. 내 첫번째 친구다. 잘 살고 있나? 그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살던 아파트 그 층에는 내 또래 애들이 별로 없었는지, 그 때 동네 친구는 호선이랑 저쪽 끝 호수에 살고 있던 자매 두명이랑 이렇게 셋이다. 그런데 그 자매들은 좀 못된 구석이 있어서 어렸을 때도 그들이랑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매일 매일 호선이랑 내 여동생이랑 그렇게 셋이 종이비행기도 만들고 고무줄도 하고 바람개비도 만들고 간식도 같이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기억은 참 따뜻하다. 보고 싶다.

잠시 유치원을 옮겼던 장면도 생각난다. 왜 잘 다니던  유치원을 갑자기 바꾸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시 친구들과 서먹하게 지냈던 일이 생각난다. 공주처럼 예쁘게 생긴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 애가 바닥에 치맛자락을 나팔꽃처럼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내가 놀다가 잘못해서 그 아이의 치마 위에 앉았는데 '뚜둑' 소리가 났다. 그 때 그 친구가 나한테 신경질을 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참 낯설었다. 원래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애들이 다 털털했었는데.

원래 다니던 유치원 기억도 많이 난다. 정은실 선생님이랑, 유치원 위치랑 구조, 사모님, 친구들, 기도를 배운 거랑, 성경 구절을 암송 하던 거랑, 매일 나를 바래다 주던 유치원 봉고차도. 그런데 이 때의 기억은 아마 7살 때의 기억이어서 최초의 기억이라고 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 봐도 7살 더 이전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절, 나와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여동생에게 너의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모든 사건에 대해 별별 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내 동생은 역시 나보다 훨씬 풍성한 장면들은 갖고 있었다. 주공아파트에 살 때 아파트 베란다 밑 화단에 나무 막대기를 줍고 싶었는데 우리가 무서워서 그 막대기를 못 주워서 이모가 나와 막대기를 주워준 적이 있었단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동생이 베란다에서 또 막대기를 발견했는데 그걸 못 주워서 내가 이모가 했던 것처럼 막대기를 주워 동생에게 주었단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 베란다랑 내가 용감하게 베란다 밑에 기어들어가 막대기를 주웠던 일이 생각난다. 또 유치원에서 갯벌로 소풍을 가서 꽃게를 잡았던 일이랑 가족들과 놀러 갔던 시냇물도 떠올랐다.

기억의 조각들. 5살인지, 6살인지, 혹은 7살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장면, 장면들. 위 에피소드 중 어느 것이 내 생애 최초의 사건인지 분명하지 않은 뿌연 화면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조각조각나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사진들.

왠지 생애 최초의 기억이라고 하면 무언가 거창한 것 같고, 대단한 장면이 떠오르리라 기대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면 아기 때 기억이니까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연상했는데. 따뜻한 햇살이나 연둣빛 잔디, 부드러운 이불, 뭐 이런 것도 아니었다. 화창한 오후와 꼬물거리는 아기,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는 축복받는 생명체. 최초의 영상으로는 이런 이미지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런 신비롭고 평화로운 장면은 커녕, 명확하고 선명하지도 않다. 생각을 더듬으면 더듬을 수록 아무런 연속성 없이 툭툭 튀어 나오는 사건들이 어지럽다. 뭐가 이러냐. 아쉽고, 무언가 매우 소중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섭섭하다.

최초의 기억은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무엇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칠 때 가끔씩 그 기억을 떠올려,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마치 예쁜 꽃이나 평화로운 사진을 보면 마음이 회복되는 것처럼. 그 어떤 누군가에게서도 위안을 받을 수 없을 때, 그런 때 혼자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도록. 그래서 그 누군가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을 혼자 감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따뜻한 사진이었으면, 했다.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30년을 넘게 살아보니, 갈수록 타인의 위로가 부질없이 느껴지는 일들이 많고, 또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과 이야기하면 안 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장면을 기대했었다. 그랬는데... 너무 큰 기대를 혼자 했던 걸까.

앞으로는 봄날 나른한 오후 같은 기억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유있고 편안하고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온화한 미소가 감돌고, 잔잔한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힘듦도 없는. 그런 장면들. 음... 내 생에 최후의 기억은 그렇게 마무리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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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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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난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다소 지리하게 전개되는 이 책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뭐 특별한 게 없어서 그랬다. 그런데 다시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에세이'로 분류돼 있는 거다! 헉. 소설이든 에세이든 큰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소설과 에세이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구분하는  엄청난 기준이다. 이건 마치... 실컷 지도를 보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걷고보니 나는 지도를 거꾸로 들고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와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누가 날 속인 건 아니지만, 괜히 속은 것 같아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 오묘한 배신감과 허망함..

에세이라. 그럼 피아노 공방도 실재고 공방의 주인인 뤼크도 실존인물이라고? 모두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공방도, 긴밀한 네트워크로만 피아노가 판매되는 비밀스러운 로열클럽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와! 카하트는 뤼크의 선택을 받은 거잖아! 엄격한 선발기준을 거쳐야만 선발될 수 있는 공방의 가족에 합류한 거잖아! 뤼크의 인정을 받은 것만으로 카하트는 공방에서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시간 날 때 공방에 들러 새로운 피아노를 기웃거릴 수도 있고, 뤼크에게 피아노의 역사며 소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다. 공방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어떤 피아노가 어떤 특별한 손님에게로 갔는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나는?  괜한 시샘이다.

낭만적이다. 저자도, 뤼크도, 공방도. 그 공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도. 아름다운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 아름다움에 몰두하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들. 그 시간과 노력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사람들. 피아노의 각기 다른 역사, 같은 브랜드의 피아노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피아노의 소리와 울림, 피아노가 소리를 내게 되는 설비의 원리와 과정, 아름다운 곡을 치기 위해, 아니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한 계속되는 연주, 피아노를 집안 한 구석에 마련하고 피아노 선생님을 알아보고 귀여운 딸에게도 이를 알려주기 위해 함께 피아노 학원을 찾는 아버지의 발길들. 모두 우아하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우아하다. 그 아름다움이 소리든, 글이든, 그림이든, 악기든, 꽃이든, 사진이든.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바람과 구름이든. 차분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우아한 사람이다. 시끌벅적한 술집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요한 공간에서 미를 탐하는 탐미주의자. 혼자만의 시간을 싸구려 유대감이나 허무한 수다로 떼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끊임없이 미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손에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충분히, 아낌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들. 그 어떤 귀족보다도 우아하고 귀품있다.

삶은 이런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진다. 피아노 위에 손을 동그랗게 올려놓고 숨을 가다듬는 순간. 피아노 공방에서 물끄러미 새로 들어온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 뤼크와 눈짓을 주고 받는 그 짧은 찰나. 짧은 장면, 장면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그 앨범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엷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설레는 추억이 된다. 잔잔히 지나가는 가벼운 떨림. 잠시, 열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 마쉬고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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