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바짝 말라 갈라진 건조지대보다는 부드럽고 촉촉한 초원이 왠지 더  풍성해 보인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강팍한 모래사막보다는 수분기 가득한 이끼에 더 많은 생명체들이 둥지를 튼다. 역시 강팍하고 메마른 마음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도는 미소가 사람을 넉넉하게 만든다.

마음이 흐믓해지는 소설이다. 건지 아일랜드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처럼 생각되고, 서로 서먹서먹하기도 했던 주인공들이 가족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참 살 만한 곳인 듯 여겨진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킷을 친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킷을 입양하는 줄리엣, 묵묵한 사랑을 보여주는 도시, 발랄한 매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솔라 등. 인간적인 애정이 무엇인지, 타인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느끼게 해준다.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소설이나,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게 읽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소설 역시 가치있다. 독자에게 힘이 된다.

이런 감상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적인 면만 열거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상황은 2차 세계 대전이었고 건지 섬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킷은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고아고, 고아라는 결핍은 평생 킷을 따라다닐 테고, 주인공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는 수용소에서 총살당했고, 하루하루 일상은 지겨울테고, 고기잡이 배를 타고 농사를 짓고 지붕을 수선하고 닭을 치고 매일 세끼를 만들어 먹어야 하고, 옷도 수선해야 하고, 장작도 패 놔야 하는 지긋지긋한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매일 넘쳐날테고. 그런데 저자는 이런 우울함이나 슬픔, 고통, 일상의 지겨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 한가로운 산책길과 이 모든 것에 걸맞은 사람들에만 집중한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저자와 주인공은 엘리자베스를 이제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는 그녀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숭고한 사랑과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래도 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 삶이 항상 화창한 것만은 아닌데. 생을 너무 아름답게만 미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잠깐. 결국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똑같이 암울한 상황 속에서는 어떤 이는 어둠을 보고 어떤 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세계 2차대전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에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은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애정을 돈독히 다지고,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희망으로 기다린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굶주린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몫을 건네주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 약을 발라준다. 엘리자베스가 폴란드 노동자를 숨겨준 것처럼, 독일 병사들도 일부러 감자 자루나 설탕자루를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척 주는 것처럼. 어디에서든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심과 휴머니즘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 세상을 오래 산 할머니 저자의 소설이라 그런지, 그녀의 소설에는 인간미와 꿋꿋함, 강인함과 온화함이 곳곳에 배여 있다.

삶을 이렇게 마주해야 겠다. 엘리자베스처럼 용감하고 씩씩하진 못하더라도. 소망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성실히, 따뜻하게.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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