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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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난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다소 지리하게 전개되는 이 책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뭐 특별한 게 없어서 그랬다. 그런데 다시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에세이'로 분류돼 있는 거다! 헉. 소설이든 에세이든 큰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소설과 에세이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구분하는  엄청난 기준이다. 이건 마치... 실컷 지도를 보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걷고보니 나는 지도를 거꾸로 들고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와 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누가 날 속인 건 아니지만, 괜히 속은 것 같아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 오묘한 배신감과 허망함..

에세이라. 그럼 피아노 공방도 실재고 공방의 주인인 뤼크도 실존인물이라고? 모두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공방도, 긴밀한 네트워크로만 피아노가 판매되는 비밀스러운 로열클럽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와! 카하트는 뤼크의 선택을 받은 거잖아! 엄격한 선발기준을 거쳐야만 선발될 수 있는 공방의 가족에 합류한 거잖아! 뤼크의 인정을 받은 것만으로 카하트는 공방에서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시간 날 때 공방에 들러 새로운 피아노를 기웃거릴 수도 있고, 뤼크에게 피아노의 역사며 소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있다. 공방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어떤 피아노가 어떤 특별한 손님에게로 갔는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나는?  괜한 시샘이다.

낭만적이다. 저자도, 뤼크도, 공방도. 그 공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도. 아름다운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 아름다움에 몰두하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들. 그 시간과 노력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사람들. 피아노의 각기 다른 역사, 같은 브랜드의 피아노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피아노의 소리와 울림, 피아노가 소리를 내게 되는 설비의 원리와 과정, 아름다운 곡을 치기 위해, 아니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한 계속되는 연주, 피아노를 집안 한 구석에 마련하고 피아노 선생님을 알아보고 귀여운 딸에게도 이를 알려주기 위해 함께 피아노 학원을 찾는 아버지의 발길들. 모두 우아하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우아하다. 그 아름다움이 소리든, 글이든, 그림이든, 악기든, 꽃이든, 사진이든.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바람과 구름이든. 차분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우아한 사람이다. 시끌벅적한 술집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요한 공간에서 미를 탐하는 탐미주의자. 혼자만의 시간을 싸구려 유대감이나 허무한 수다로 떼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끊임없이 미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손에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충분히, 아낌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들. 그 어떤 귀족보다도 우아하고 귀품있다.

삶은 이런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진다. 피아노 위에 손을 동그랗게 올려놓고 숨을 가다듬는 순간. 피아노 공방에서 물끄러미 새로 들어온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 뤼크와 눈짓을 주고 받는 그 짧은 찰나. 짧은 장면, 장면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그 앨범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엷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설레는 추억이 된다. 잔잔히 지나가는 가벼운 떨림. 잠시, 열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 마쉬고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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