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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괜시리 마음이 헛헛한 밤이 있다. 공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부여잡아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날들. 뚫어져라 쳐다봐도 휑하니 비어있는 두 손이 허전하고 민망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먹어치워야만 빈 공간들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밤. 먹어도 먹어도 가시지 않는 허기가 서러워, 꾸역꾸역 미어지게 틀어넣으며 흐르는 눈물을 꺽꺽거리며 억지로 삼켰던 날들이 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기에, 무엇이 그리 불안했기에. 아마도 나는 당시 조금 아팠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피자 한 판을 단숨에 먹어치울 수는 없었겠지. 그래도 스스로 내가 아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삶이 조금 무기력하게 느껴졌을 뿐이고, 왠지 모르게 조금 흐트러지고 싶었고, 가끔은 일상적인 규칙에서 벗어나 얼마간 나태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뭐 이런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시 되짚어 보면 당시 나는 속이 허했었나 보다. 기댈 곳 없는 삶이, 아구아구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인생이, 치고받고 할퀴는 회사생활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조금은 버거웠었나 보다.
그래서 자꾸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현실을 외면하고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자꾸 책으로 도피하는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지하는 것은 부족해 비록 활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물을 붙잡고 싶었었는가. 자꾸만 부서지고 산만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느라 지쳐, 차라리 쏟아내 버리자, 하며 글로 토해내는가.
누군가가, 예술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 한 구석이 이지러지고 아픈 사람들, 이라고 했었나. 책을 탐닉하고, 화가들의 삶 언저리를 서성이고, 이제 꽃의 아름다움까지 쥐고자 하는 것이 그 때문이었나. 그리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픈 줄도 모른 채 끙끙거렸구나. 책을 읽어 회복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을 보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아련하게 느껴지는 허브 향기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 하기를.
저자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이제 웬만한 상처에는 무심한 얼굴로, 씨익, 웃으며 가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아무리 일기를 써보고 음악에 몰입해 봐도 한 번 생긴 흉터가 아기살처럼 차오르지는 않겠지만. 독한 허브 향에 취해도 내일 아침이면 환각에서 깨어나야겠지만. 그래도, 헛된 바람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그의 거죽이 조금 더 질겨지기를. 태어나기를 쉽게 상처받게 생겨먹은 영혼이라,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난 심장이라 이번 생, 한꺼번에 쏟아지듯 날아오는 화살을 온 몸으로 그대로 받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몸부림치면 조금씩은 두꺼워져 단단해 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