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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남민전. 이게 뭐지?
아마 나와 동일한 세대의 사람이라면 남민전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 우리 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 때문에 누군가는 감옥살이를 하고 누군가는 한국에서 추방을 당하고 누군가는 지명수배 돼 도망을 다녔다니. 역사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나 한시적이고 가변적이다. 그리고 잊혀지는 '사실'이다.
갑자기 세상이 조금 무서워졌다. 급박하게 돌아갔던 누군가의 인생이, 한국에 오지 못했던 누군가의 유년기가 이제는 그게 뭐야, 라며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잔인하다.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라며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제는 그 시절과 너무 멀어져 버린 우리.
나의 세대는 사상과 이념이 없는 세대며, 피를 토하며 함께 부를 노래가 없는 시절이다. 최루탄 냄새로 눈이 에리던 거리에 대해, 언젯적 소리 아직도 하냐며 염증을 느끼는 무리다. 대동단결의 경험이 없는 모래알이고 하나의 목표와 연대의식이 없는 결핍의 객체들이다. 누군가를 제쳐야 취업을 할 수 있는 백수들이며 '우리'라는 말보다는 '경쟁'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국어사전이다. 나의 세대는, 매일 아침 깨어나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사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가젤이며, 가장 느린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자이고, 가젤이냐 사자이냐에 관계없이 해가 뜨면 무조건 뛰어야 하는 스프린터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홍세화가 부럽다. 그는 낭만이 있는 시대를 살았고 그에게는 이상이 있었으며 그에게는 함께 같은 꿈을 꾸는 동지들이 있었다. 생각하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여유있는 시절'을 살았다.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면 바로 뒤쳐져 버리는 요즘과 비교하면 택시 운전사를 꿈꾸고 노동운동을 하고, 스펙과 전혀 관련 없는 허튼 짓을 하더라도 언제든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는 '유연하고 헐렁한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풍요와 속도와 발전 속에 살고 있는 너희들은 배부른 소리하는 거다, 라고 누군가는 우리를 비난할 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처절한 경쟁 체제가 채 갖춰지지 않은 그 때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단 말이다.
조금씩 더 좋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거겠지? 유신 체제 때 보다는 지금이, 팍팍한 지금보다는 몇 십년 후가. 한 세대가 또 지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지? 나의 다음 세대는, 지금의 우리 시절을 부러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어디로 택시를 몰아야 다음 세대가 더 인간적이고 살 만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